칠레산 '몬테스 알파'. 한국에서 '국민 와인'으로 통하는 포도주다. 소주로 치면 '참이슬'이나 '처음처럼'급이다. '몬테스' 라벨이 붙은 와인은 지난해 9월 한국에서 누적판매량 300만병을 넘어섰다. 올해 말까지 400만병을 돌파할 전망이다. 전무한 판매기록이다. 몬테스 알파에 한국인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격에 비해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 비결이다." 몬테스 와인의 창업자 아우렐리오 몬테스 회장의 말이다. 그는 이달 초 미국에 이어 세계 2번째로 몬테스를 많이 마셔주는 나라, 한국을 찾아와 이같이 근사한 말을 남겼다. 놀랍게도 그의 말은 진실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는. 몬테스는 그를 추종하는 수많은 한국 애호가의 뒤통수를 쳤다. '좋은 품질, 저렴한 값'이라는 칠레 와인의 통념(또는 몬테스 회장의 말)이 허구임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가격표 한 줄이면 충분하다. 가장 인기 있는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은 국내에서 4만4000원에 팔린다. 세계 최고가이자 웬만한 나라의 두 배 값이다.(소비자 시민모임 조사) 레스토랑에서 6만~7만원, 특급호텔에서는 8만~10만원까지 올라간다. 칠레에서 몬테스 알파 가격은 7~8달러 정도. 수송비 등을 보태도 수입가는 1만원 안팎이다. 그런 와인이 어떻게 4만원 넘는 값에 팔릴까. 한마디로 떡을 키워 여럿이 나눠 먹기 때문이다. 각종 세금을 제하고 남은 3만여원을 수입업자, 도매상, 와인가게가 사이좋게 1만원씩 챙기는 식이다. 수입업자나 유통상만을 탓할 것인가. 발등을 찍은 진짜 도끼는 믿었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ㆍ칠레 FTA가 타결됐을 때 소비자가 덕 볼 리스트의 맨 앞줄에 오른 것이 와인이었다. 칠레 와인에 붙던 15%의 수입 관세는 2009년 철폐됐다.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관세가 없어졌는데 값이 떨어지기는커녕 올라갔다. 몬테스 알파 값은 2008년 3만5000원에서 8000원 이상 올랐다. 'FTA 미스터리'는 얼마 전 명품시장에서도 벌어졌다. 한ㆍ유럽연합(EU) FTA 발효 직전 유럽 명품 메이커들이 약속한 듯 값을 올렸다. FTA로 관세가 내려가고 그만큼 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상식을 뒤집는 도발이었다. 역시 관세 인하에도 명품 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상혼의 배반에도 명품 마니아들은 불변의 충성심을 표시했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몬테스나 명품 마케팅에 시비 걸자는 게 아니다. 몬테스는 오크 통에 24시간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다고 홍보한다. 그것이 어떤 효험을 내는 비법인지 알 수 없지만 뛰어난 마케팅 수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게 포장하고, 속이고, 놀리는 게 장사꾼이다. 문제의 핵심은 'FTA 효과'라는 본질의 실종이다. 수출의존도가 절대적인 나라, 세계가 편 갈라 경제패권을 다투는 상황에서 FTA는 분명 대안의 하나다. 국익이 걸린 문제이니 추진 과정에서 엄중한 검토와 치열한 논쟁은 당연하다. (홍은주 교수가 지난 17일자 칼럼 'FTA 관전법'에서 이를 잘 지적했다.) 그 이후는? 정작 발동되면 모든 소리가 잦아든다. 한ㆍ칠레도, 한ㆍEU도 그렇다. '하자' '말자' 난리 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소기의 성과가 나는지, 약속이 빈말이 된 것은 아닌지 따지고 혼내고 교훈 삼으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FTA는 관세 완화가 주 타깃이다. 수입가격 인하의 직접적 수혜자는 소비자다. 그러니 소비자들도 FTA 논란에 대해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참는다. 피해 볼 이웃, 더 큰 국익이 마음에 걸려서다. 그런 착한 소비자들도 칠레 와인 같은 황당한 일을 당하면 참기 어려워진다. 왜 세금 깎아 주고 뺨 맞나. FTA가 다시 나라의 이슈다. 지금 목소리 큰 사람들, 두고 보자. 박명훈 주필 pmhoo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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