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도시농업 현장 강동구 공공텃밭 가보니
강동구 도시 전체가 농업에 푹 빠졌다. 지난 1년간 지역 내 텃밭 1600구좌가 만들어졌고 농사는 처음이라는 도시사람들이 농사 전문가로 변신했다. 도시농부들은 농사 커뮤니티를 만들어 수확물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는 새로운 도시 공동체 모델을 창출했고 여기에 기존 농부들도 합세하면서 로컬푸드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친환경 도시농업 선두 지자체 강동구를 가봤다. 지난 15일 오후 강동구청 주차장에서 ‘사람이 아름다운 강동’이라는 문구가 붙은 공무차량을 타고 10여분을 달려 둔촌동 118-1번지 일대 ‘도시텃밭’에 도착했다. 강일동, 고덕동, 암사동을 포함한 강동구의 대표 공공텃밭 중 한 곳이다. 주변에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한 가운데 직사각형 모양으로 넓게 펼쳐진 배추와 무 등 각종 채소가 아기자기하게 심어진 녹색 밭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직 해가 남아 있어 삼삼오오 밭 곳곳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려는 사람들도 보였다. 둔촌동 도시텃밭은 1구좌당 16.9㎡ 규모로 총 380구좌가 있다. 이곳에 밭을 가진 구민들은 지난 2월 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텃밭 신청을 해서 선정된 케이스다. 구민들은 종자와 비료 구입비 등 실비조로 연간 5만원만 내면 밭을 경작할 수 있다. 각 구좌마다 밭 경작 가구에서 써 붙인 이름 푯말이 꽂혀 있다. ‘행복터전’ ‘지렁아, 지렁아’ ‘미소정원’ ‘푸르게 푸르게’ ‘지현승준팜’ ‘임씨네’ ‘형빈이네’ ‘건강이 가족’ 등 푯말 하나하나마다 개성이 넘친다. 밭은 밭 주인에 따라 심은 농작물도 제각각이다. 올해는 무엇보다 배추와 무가 풍작이다. 어른 허리둘레만한 크기의 배추들이 밭 전체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배추는 유기농으로 재배돼 잎사귀마다 벌레 먹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 그 외에도 밭에는 주인의 취향에 따라 간간히 무, 파, 고추, 상추, 깻잎, 아욱, 부추, 시금치 등이 골고루 자리잡고 있다.밭에서 뭔가를 따오는 주부 2명과 마주쳤다. 성내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었다. 김혜진(49)씨는 텃밭 주인이다. 그는 이날 저녁 반찬을 만들기 위해 밭에서 상추와 아욱 잎을 땄다. 지난봄에 구정 소식지를 통해 공공텃밭 이용해 농사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넷 신청을 해 텃밭을 갖게 됐다. 그는 “손수 씨앗을 뿌려 기른 농작물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며 “여름엔 날마다 아이들과 밭에 와서 살았을 정도로 이곳에 오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추를 심어 여름에 주위에 많이 나눠줬다”며 “농약을 안 주고 재배해서 그런지 상추가 냉장고에서도 오래 견디고 직접 밭에서 나는 걸 그날그날 뜯어 먹으니까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와 함께 온 강현주(50)씨는 아직 텃밭이 없지만 이웃 김씨 밭에서 자주 반찬거리를 마련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날도 김씨의 텃밭에서 부추를 잘라 가는 길이었다. 그는 내년엔 자신도 인터넷 신청을 통해 텃밭을 꼭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요즘 주변에서 텃밭을 하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져 인터넷에서 공고가 뜨면 한 시간도 안 돼 접수가 끝날 정도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며 텃밭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열기를 전했다.
텃밭의 또 다른 한쪽에서는 배추와 무를 수확하는 시어머니, 며느리, 손주 3대를 만날 수 있었다. 둔촌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승헌이네 텃밭이다. 시어머니 손귀남(60)씨와 며느리 민근영(35)씨는 분가해 살고 있다. 이들은 매일 밭에서 만나 함께 농작물을 가꾸며 2년째 가족의 정을 나누고 있다. 이 가족은 손주 승헌이의 건강과 정서를 위해 텃밭경작을 생각한 며느리 민씨의 제안으로 밭을 일구게 됐다. 민씨는 “아이가 매우 좋아하고 약을 안치고 채소를 재배해 먹으니까 믿을 수 있고 안전한 식생활이 가능하다”며 “가사에도 도움이 되고 재미있고 아이들도 좋아해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텃밭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처럼 강동구엔 공공텃밭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구 전체 226구좌에 불과하던 텃밭이 올해 1600구좌로 확대됐다. 구가 지난 3월 친환경 도시농업 특구를 선포하며 ‘1가구 1텃밭 갖기’ 등 ‘2020 친환경 도시농업프로젝트’를 발표한 후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다. 구는 올해 공공텃밭 1600구좌를 비롯해 각 가정에 상자텃밭 3000여 구좌를 제공했다. 이런 강동구의 도시텃밭은 인기가 대단하다. 공공텃밭 분양의 경우, 인터넷 순간접속 인원이 5000명에 달할 정도다. 구는 이런 공공텃밭은 더욱 확대해 2020년까지 주말농장·도시텃밭 8000개를 조성할 계획이다.
강동구는 자원을 재활용하고 친환경 농사를 정착시키기 위해 지난해 말 상일동 일대에 낙엽퇴비장을 조성했다. ⓒ강동구청 제공
이처럼 강동구가 짧은 기간에 도시농업의 기반을 갖추게 된 데는 몇 가지 비결이 있다. ‘친환경농법’ ‘탄탄한 네트워크’ ‘함께 나누는 공동체’ 가 바로 그것이다. 강동구는 지난해 11월 ‘친환경 도시농업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친환경 농사를 정착시키고 보다 저렴하고 편리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도시농부들에게 봄·가을에 계절 작물 모종과 씨앗, 퇴비와 친환경 약재를 지급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말 상일동(431-1 외 5필지)에 5735㎡ 규모의 낙엽퇴비장을 조성했다. 지자체마다 골머리를 앓는 낙엽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둔촌동과 강일동 공공텃밭에는 지렁이 사육장도 마련해 원하는 도시농부들에게 지렁이를 분양하고 아이들의 교육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강동구의 도시농업은 텃밭 보급부터 전문가 양성, 로컬푸드로까지 통합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7월 강동구 평생교육대학 수료생 75명 중 34명이 건국대 총장명의의 도시농업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해 현재 ‘텃밭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각 가정에 보급된 상자텃밭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또 ‘도시농부학교’ ‘친환경 도시농업학교’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농사 기술을 전수하고 도시농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기회가 마련되고 있으며 도시농부 양성도 이뤄진다. 강동구의 도시농업의 경쟁력 중 하나는 기존의 친환경 농가들이다.
강동구는 도시농업을 통해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사진은 다둥이 가구 전용 텃밭을 이용하는 구민들의 모습. ⓒ강동구청 제공
강동구에는 현재 305개의 농가가 있으며 이 중 친환경 인증 농가는 62곳이 있다. 친환경 농가들은 30ha에서 오이, 호박, 토마토 등 연간 약 2108t의 작물을 생산한다. 구는 친환경 농산물을 지역 내 학교에 공급하기 위해 양평지방공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지역 농가가 생산한 채소를 급식재료로 사용하는 초기단계의 로컬푸드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 농산물 생산농가 협의체를 구성해 생산·유통 과정을 통합한 직거래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구는 또한 다둥이 가구, 장애인 가구를 위한 ‘사회적 배려 전용 텃밭’과 수확물을 저소득 계층과 나누고 도시농업을 체험할 수 있는 ‘나눔·체험 텃밭’을 운영하는 등 도시농업을 중심으로 공동체 문화를 확산하고 있다. 이런 강동구 도시농업 활성화 사업들은 다른 지자체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서울시 내 송파, 성북, 도봉, 노원 등 인근 자치구의 벤치마킹과 함께 부산, 대구 등 전국 대도시에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강동구 지역경제과 친환경도시농업팀 관계자는 “도시농업은 이제 시대적 트렌드가 됐다”며 “지금까지는 지자체에서 시작됐지만 앞으로는 시민들의 실질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다양한 도시농업 정책들을 민간으로 전환하는 노력들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쭦미니 인터뷰 | 이해식 강동구청장“건축물 조경 기준·농지은행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강동구는 지난 9월 제8회 지역산업정책대상에서 친환경도시농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온 점을 높이 평가받아 종합 부문 우수 자치단체로 선정됐다. 강동구 친환경 도시농업을 공약사업으로 추진해온 이해식 강동구청장을 만났다. ■ 도시농업을 지역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게 된 배경은 뭔가. “기후 변화가 전 지구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인구의 도시 거주 비율인 도시화율도 80% 이상으로 높은 상황에서 도시가 친환경 사업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안 되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여러 가지 친환경 사업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먹거리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도시의 친환경 이미지를 제고할 사업으로 도시농업은 굉장히 중요하다. 강동구는 전체 면적 중 절반(44.3%) 가까이 녹지로 자연 환경이 잘 보존돼 있다. 서울 도시농업의 메카가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 도시농업이 지역사회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뭐라고 보나. “현재 상자텃밭과 공공텃밭, 낙엽퇴비장, 지렁이사업장이 제반 효과를 내면서 많은 주민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도시농업을 하게 되면 농부만 농사를 짓는 게 아니다. 가족단위로도 농사를 많이 짓게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와 손녀와 손을 잡고 함께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따라서 가족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고 아이들은 생명이 움트고 자라는 것을 직접 보면서 자연에 대한 신비와 음식의 귀중함을 배울 수 있다. 또한 먹거리에 대한 주부들의 불안감도 많이 해소되고 있다.” ■ 도시농업 활성화를 위해 앞으로 보완할 점이 있다면…“지난 6월 정부 녹색성장위원회(대통령 직속)에 자치구 대표로 가서 두 가지 건의를 한 적이 있다. 하나는 건축물 조경 기준에 대한 것으로 현재 아파트 화단 등에 나무나 초과류만 심을 수 있게 한 기준을 텃밭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농지은행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도시농업은 텃밭을 구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농업은 근본적으로 땅에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 현재 농지은행에 토지를 맡기면 5년 이상 맡겨야 세금 감면이 되는데 농지은행에 토지를 단기간만 맡겨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 개발이 유보된 땅이나 나대지 등도 농지로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농업법이 조속히 제정돼 중앙정부와 지자체간 역할부담체제로 도시농업이 활성화해야 한다.”미니 인터뷰 | 강동구 도시농부 4인방“친환경 로컬푸드 우리가 책임진다”
강동구 도시농부 4인방이 지난 15일 개장한 ‘강동도시농부’ 매장에서 직접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전왕규, 박덕삼, 최재일, 문홍기씨.
“저희 농부들이 공들여 키운 친환경 농산물을 우리 지역 아이들과 주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맘껏 먹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박덕삼, 문홍기, 전왕규, 최재일 등 강동구 도시농부 4명이 자신들이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유통하고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을 꾸렸다. 평생 농사만 짓던 이들이 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강동구 지역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친환경 인증 농가에서 농사를 지어온 토박이 농부들이 각기 지역의 작목반 활동을 하던 중 지난 7~8월 강동구가 희망제작소와 함께 운영한 사회적기업 아카데미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것이 계기가 됐다. 평소 친환경 농가의 경쟁력 강화와 로컬푸드에 대한 접목을 고민해온 도시농부 4명은 공동 출자를 통해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박덕삼 대표는 “친환경 인증농가로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안전하고 좋은 먹거리로 소비자에게 다가서고자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계기를 밝혔다. 둔촌동에 위치한 가게 이름은 ‘강동도시농부’로 지난 15일 오후 개장식을 하고 사업을 본격화했다. 매장 규모는 총 80㎡(24평)로 이곳에선 강동도시농부 4명의 논과 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산물을 비롯해 지역 친환경 농가에서 생산되는 곡류와 간식류, 양념류 등 상품 약 200종이 취급될 예정이다. 농가 재배품목의 경우 시중보다 최고 절반 가까이 저렴하고 다른 물품들도 유통마진을 최소화해 시중보다 5% 정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강동도시농부는 모든 강동구 주민들이 친환경 로컬푸드를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로 설립됐다. 우선 지역의 어린이집에 친환경 재료를 제공하는 것을 첫 단계로 시도할 예정이다. 전면 친환경 급식이 이뤄지는 초등학교와 달리 어린이집은 친환경 급식 비율이 낮기 때문에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취지다. 도시농부들은 현재 강동구 내 24개 구립어린이집과 60개 서울형 어린이집 급식운영위원회 등에 제안서를 보내 식재료 공급 계획 의사를 타진 중에 있다. 또한 급식 유통망을 구축한 뒤에 ‘꾸러미 사업’으로 점차 가정으로 판매를 확대할 예정이다.최재일 이사는 “대형 유통업체를 거치는 중간 마진이 붙지 않을 뿐더러 당일 재배한 채소를 배달함으로써 신선도를 유지함과 동시에 로컬푸드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간국 김은경 기자 kekisa@ⓒ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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