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가장 나답게 최선을 다해 살려는 현명함이 생긴 것 같다”

<div class="blockquote">유아인과의 인터뷰는 가는 실 한 가닥을 붙들고 미로의 끝을 찾아가는 여정과 같다. 어떤 질문과 주제에도 자신만의 언어로 답을 내놓고 새로운 의문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실은 가느다란 대신 튼튼하다. 1년 전 KBS <성균관 스캔들>로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청춘스타의 반열에 오르고 올 가을, 그가 그동안 그려냈던 수많은 방황하는 청춘들과 또 다른 얼굴의 소년 <완득이>로 돌아오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그 하나다. 유아인은 여전히 유아인으로 산다. 그래서 흥미롭다.
<완득이>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배우에게 는 왜 항상 많은 짐이 지워질까. 외롭고 가난하고 방황하는 캐릭터들을 유독 자주 연기한다. 유아인 : 정말로, 항상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짐을 짊어지고 있지 않은, 아주 보편적이고 누구나 겪는 것들을 겪는 십대는 사실 재미가 없으니까.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서는 KBS <결혼 못하는 남자>의 형규 정도가 드물게 건전하고 보편적인 이십대였던 것 같다. 그 애에게도 나름대로의 고민은 있었겠지만 그게 굳이 작품으로 드러나지는 않았고. <완득이>에서 “저한테 도대체 왜 그러세요?”라고 하소연하는 순간 ‘서러운 얼굴’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캐릭터 뿐 아니라 이 배우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억울함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인 : 그 표정이 내 표정이 맞다. 나에겐 ‘세상은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럴까’라는 면이 틀림없이 있고, 완득이는 나보다 좀 더 어린 친구라는 설정을 더해 넣은 것뿐이다. 그리고 얼굴 구조적으로 정말 서글프고 불쌍한 걸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눈썹 가운데가 이렇게 올라가는 표정이다. (웃음) 예전에는 막연히 어렵다고 생각하고 본능적으로 연기했다면 이제는 어떤 근육을 써서 그 감정을 표현할 것인가를 분석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H3>“세상은 누구에게나 지랄 맞고, 어른들은 누구에게도 재미없다”</H3>
하지만 사실 영화 초반에는 완득이의 캐릭터가 쉽게 잡히지는 않는다. 가난, 장애인 아버지, 알지도 못했던 필리핀인 어머니의 존재 등 ‘불행의 요건’을 다 갖추고 있음에도 완득이는 거칠거나 센 반항아가 아니라 매사에 무덤덤하고 어떤 면에선 어른들보다 성숙한 인간이다. 이 ‘사람’에 대해 전체적으로 어떻게 이해했나. 유아인 : 사실 아주 극단적이거나 거친 반항아보다 완득이 같은 반항아, 아니 실은 반항아도 아닌 이 친구가 이해하기에는 훨씬 쉬웠다. 그게 현실이니까. 실제로 학교를 뛰쳐나오는 친구보다 학교 안에 있는 친구들이 더 많고, 가정환경이 아무리 안 좋아도 집을 나오는 아이보다 부모의 품 안에 있는 아이들이 더 많다. 그걸 많이 생각했다. 사실 그런 면에서 완득이는 이전에 연기했던 캐릭터들과 오히려 좀 동떨어진 인물이다.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대신 자기 안에서 자기와 싸우는 자세 자체가 나보다 훨씬 순수하고 착하고 매끄럽고 동글동글한 아이인지도 모른다. 그 동그란 테두리 안에서 자기 혼자 뾰족뾰족한 거지, 외벽 자체가 뾰족뾰족하거나 모난 아이는 아닌 거다. 심지어 그 어떤 어른들보다도. 또 한 편으로는, 완득이가 킥복싱을 시작했다고 해서 이 아이의 미래가 그렇게 탄탄대로를 달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인 : 사실 많은 사람들은 엔딩에서 완득이가 킥복싱 대회에서 우승한다거나 성공의 희망이 비춰진다거나 하는 걸 바랐을지 모른다. 우리 부모님도 “대회 나가서 이기던가!” 하시던데. (웃음) 하지만 나로서는 이 영화에서 운동이 촌스럽지 않게 쓰여서 좋았다. 사실 ‘왜 또 운동이어야 하나’ 라는 의문이 있기는 했다. 운동이 아니면 청춘의 에너지를 풀어내는, 세상으로 발돋움하고 깨지고 부서지는 장치를 생각할 수 없을까하는 투정도 들었다. 하지만 처음 설정되어 있었던 정확한 해피엔딩에서 방향이 바뀌었고, 우리 영화의 어찌 보면 다소 진부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신선하게 접근된 소재들처럼 운동 역시 새롭게 그려졌다는 면이 좋았다. 십대를 그린 작품에 스포츠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환경적으로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기 때문이 아닐까. 유아인 : 그리고 또 하나는, 아무래도 기성세대가 그리는 십대와 이십대의 모습이 아주 다채로울 수는 없는 것 같다. 내가 받아 보는 작품들을 봐도 불량청소년, 이십대 반항아, 물론 좋다. 그런데 좀 더 특수한 상황, 특수한 형질을 가진 캐릭터가 많지 않다는 게 아쉽다. 사실 그동안 연기했던 방황하는 소년, 청년들이 <완득이>처럼 상업영화의 주류까지 들어와 주는 것 자체는 달가운 일이지만 이제는 좀 더 깊이 치고 들어가는 걸 해보고 싶다. 물론 내가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만. 하지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종대처럼 총을 들고 다니는 ‘사회전복적’인 캐릭터로는 장사가 어려울 수도 있다. (웃음) 유아인 : 사실 종대가 처한 상황이나 현실은 완득이와 진배없다. 차이는 감정의 진폭이고 받아들이는 자세의 차이인데, 그렇다면 밑으로만 파고들어가는 게 아니라 특수한 설정들을 통해 풍성하거나 신선하게, 상업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나도 하나의 패턴이 됐고, 내 이미지가 결정지어졌고, 사람들이 왜 계속 반항아 역할만 하냐고 나에게 추궁하기 시작했다면 그 안에서 내가 추구할 수 있는 건 같은 반항아에 일그러진 청춘일지라도 껍데기만 핥는 게 아니라 좀 더 나가보는 거다. <H3>“욕을 먹어도 재밌으니까 이 일을 한다”</H3>
앞서 말했듯 대부분의 십대들은 학교와 가정 안에서 주어진 상황을 견디는 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학교를 그만두고 나온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고 평생의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는데 고등학교를 일찍 그만둔 이유 중 하나로 “나에게 주어진 상황 중 내가 선택한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을 그렇게까지 견딜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유아인 : 내 밖에서 일어나는, 나를 자극하는 일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가지는 자세가 중요하다. 같은 것을 바라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감정의 진폭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절대적 기준에서 보면 완득이가 처한 상황은 굉장히 불우하기 때문에 ‘일탈할 자격’이 주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일탈하지 않고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에 비해 나는 아주 극단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 사실 학교는 누구라도 다니기 싫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지랄 맞고, 어른들은 누구에게도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 그러니까 ‘과연 그 일이 그럴 만한 일이었나?’ 보다 ‘과연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이 더 중요한 거다. 그런 자신의 기질을 바탕으로 선택을 해 왔고, 지금은 그게 나라는 사람이 되었다.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 제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텐데. 유아인 : 좀 더 어렸을 때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심지어 뭐가 옳고 그른지도 잘 몰랐다. 그냥 막연히 느껴졌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순간들을 계속 맞닥뜨리고 점점 더 어려운 선택을 해 나가면서 지금은 그렇게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가려볼 줄 아는 눈, 나의 필터가 생겼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 지로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미 누구이고 여기에 있는데 여기서 뭘 잃어버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상태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KBS <성균관 스캔들>의 성공 이후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원하거나 혹은 간접적으로 기대하는 것들이 늘어났을 것 같다.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그런 것들로부터 떠밀려가지 않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기도 하나. 유아인 : 뭔가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변한 건 없다. 물론 그것들을 보고 있는 그 순간은 부담스럽고 신경 쓰이지만 정작 선택의 순간에는 불필요하다. 다만 그로 인해 나를 향한 눈, 나를 형성하는 여론, 내 팬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하는 것들을 그냥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선택은 순간의 판단이고, 일상과는 조금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다. 남들의 요구나 스스로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비판으로 인해 상처받고 무기력해지는 순간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과정을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하다. 유아인 : 물론 상처를 받아왔고 지금은 이해하게 됐다. 그냥 그게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인지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생겼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에 맞춰서 행동할 수 있게 됐고 좀 더 노력을 기울이고 싶어졌고, 또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멍청한 용기도 생긴다. (웃음) 거기에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게 더 이상 그렇게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하면?유아인 : 그만둘 수도 있다. 위험하거나 무책임한 발상일 수도 있지만 나는 재미있어서 일을 한다. 욕을 먹어도 재밌어야 하는 거고. 어느 책에선가 “칭찬받을 줄 알고 하는 일이 아니라 욕먹을 줄 알고 하는 일이다. 그 사건이 전부가 아니고 그 하나의 일이 전부가 아니다. 결국 내 흐름 속에서 가는 거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그렇게 흐름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배우로서,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취해야 할 자세도 그런 것 같다. 사람들로부터 다 떨어져 있지 않고 다 나와 있지도 않으면서 또 다 담그고 있지 않은, 한 발 혹은 두 발은 앞에 있어야 하는 거다. <H3>“지랄 맞고 재밌기도 한 세상”</H3>
흐름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항상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려고 애쓰는 것 같다. 유아인 : 이제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거울 하나가 항상 옆에 있는 것처럼 비춰보게 된다. 하지만 또 애쓰지 않는 순간 그 거울이 굴곡지고 흐려지고 먼지가 쌓여서 어느 순간 깨져버릴 수도 있을 거다. 사실 나는 내가 굉장히 세련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몇 주 전 인터뷰에서 “저는 세련된 게 뭔지 알고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요”라는 건방을 떨기까지 했다. 그런데 계속 ‘촌스러움’과 ‘세련됨’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일상 속에서 “이건 촌스러워”, “이건 세련됐어”라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나는 사실 세련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거울이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눈곱이 안 끼는 사람이 아니라, 눈곱이 낀 걸 보고 뗄 수 있는 사람 정도인 거다. 요즘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이 지금의 현실과 벽을 친 채 이야기를 펼치는 데 비해 <완득이>가 흥미로웠던 이유 중 하나는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캐릭터,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가. 유아인 : 재밌는 세상이라고 느끼는 만큼 더 지랄 맞은 세상이라 느끼는 감정도 점점 커진다. 눈을 뜨면 뜰수록 양 극단을 함께 보게 되기 때문에 즐겁진 않지만 흥미롭다. 사실 사람이 아무리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 해도 멈추는 시기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다시 퇴보하는 거다. 항상 걱정했던 건, 내가 조금 일찍 조숙해진 만큼 그 순간이 빨리 다가올지 모른다는 거였다. 남들은 서른에 퇴색될 것들이 나는 스물다섯에 빛바래면 어쩌나, 그 때 비겁해질 것들을 여기서 비겁해지면 어쩌나. 그런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멈추지 않아서, 그나마도 지랄 맞고 재밌기도 한 세상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요즘 읽고 있는 책으로 윤의섭의 시집 <마계>를 언급한 기사를 봤다. 사실 소설을 읽는 것과 시를 읽는 것은 아주 성격이 다른 행위라고 생각되는데, 시를 읽는 것으로부터 무엇을 얻나. 유아인 :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일 수도 있다. 시는 짧은 글이고, 그래서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그 짧은 텍스트 안에서 소설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텍스트를 읽어내고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사람이라는 게 연기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을 준다. 내가 계속 써와서인지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눈이 생겨서인지 굉장히 다르게 읽히고 구체화되면서 화자의 마음에 좀 더 가깝게 닿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역시 소설보다는 시에 더 가깝다. <완득이> 또한 완득이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친절한 얘기이기도 한 것이, 눈물 흘리고 불안해하고 방황하고 스스로 싸우는 일련의 과정들이 구구절절 설명되지 않다. 하지만 영상으로 보여지는 영화의 바탕에 그 함축적인 지점들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허술해졌을지 모른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자신을 완전 연소시키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다 해도 어느 순간 불안해지거나 불충분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스스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 유아인 : 요즘은 사실, 내가 내 생각만큼 오늘을 사는 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 그래서 예전의 내가 “저는 오늘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내일 죽어도 상관없어요”라고 했다면 지금은 “저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더 좋은 거라고, 그게 더 나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바로 ‘오늘’의 나는 어떤가. 유아인 : 예전엔 오늘을 잘 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밀어내는 시간이 많았다면, 지금은 내가 오늘 맞닥뜨린 것들에 대해 가장 나답게 최선을 다해 살려는 현명함이 생긴 것 같다. 상황을 받아들이되 나를 버리지 않는 방법을 찾으면서. 물론 어릴 때는 정말로 싸워야 하는 시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지나왔기 때문에 지금의, 오늘의 내가 된 거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최지은 five@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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