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영의 좋은시선]선수협회를 둘러싼 참새들의 잡음

최근 한국프로야구는 ‘최동원’이라는 큰 별을 잃었다. 최 선배는 현역 시절 프로야구 선수회 창립을 주도했다. 원대한 뜻은 선수들의 동의 부족과 구단들의 압박, 회유 등에 발목을 잡혀 불발됐다. 롯데는 이를 빌미로 삼성과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최 선배와 롯데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현역 은퇴 이후 한 번도 롯데 유니폼을 입지 못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난달 30일 롯데 구단의 영구결번(11번) 행사가 떠나는 길에 위로가 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 역시 현역 시절 최 선배와 비슷한 고역을 겪었다.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 창립에 앞장서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롯데 구단과 불편한 관계에 놓였다. 구단은 최 선배처럼 2001년 필자를 삼성으로 트레이드시켰다. 짐을 꾸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배의 뒤를 따르게 됐구나.’선수회 창립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지 10년 뒤인 1999년의 일이다. 골든글러브 시상식 직후 잠실구장 근방에서는 선수협회 창단을 위한 첫 미팅이 있었다. 첫 시도는 아니었다. 이전에도 몇몇 선수들이 모임을 마련해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준비 부족 등으로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을 겪으며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1999년 가진 자리의 모양새는 조금 달랐다. 1999년 한일 슈퍼게임 대표팀 멤버들은 물론 그 해 골든글러브 수상자들이 대거 운집했다. 각 구단을 대표하는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던 셈. 자리에 참석한 25명의 선수들은 긴 논의 끝에 선수협회를 결성하는데 뜻을 함께 하기로 했다. 앞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구단들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준비과정을 알아채 이내 풍파를 맞게 됐다. 새어나간 정보에 선수들은 당황했다. 창단총회 예정일을 3월에서 2000년 1월 21일로 앞당긴 건 이 때문이었다.
많은 일들이 벌어졌지만 선수협회는 끝내 실체를 인정받았다.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김한길의 중재 덕이 컸다. 사실 당시와 지금에 큰 차이는 없다. 10년 이상이 흘렀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선수협회와 관련한 일들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구단들의 눈치를 살피거나 조심스러워한다. 선수협회의 최초 창립 목적은 선수들의 어려움을 대변하는데 있었다. 본질에 대한 기능은 현재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권시형 사무총장 등은 그간 소송을 불사하며 현역, 은퇴 선수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노력은 다양한 결실을 맺었다. 경제적 능력을 갖추게 됐고 그로 인해 은퇴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 창립 초창기 불이익을 당한 선수들에게도 늦게나마 보상해 줄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선수협회는 최근 다양한 잡음에 시달린다. ‘사무총장이 몰래 돈을 챙겼다’, ‘선수회장이 선수들 몰래 뒷돈을 먹었다“ 등의 억지스런 주장이 인터넷을 통해 떠다닌다. 검찰은 선수협회 사무국과 의혹을 받는 인사들의 정보를 압수 수색했지만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잡음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이전에는 선수협회 이야기만 나와도 고개를 돌리고 도망치던 이들이 없는 말까지 만들어내며 벌떼처럼 덤벼든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선수들의 각종 사건, 사고를 뒤처리하고 구단과의 치열한 머리싸움으로 야구인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고생했다’, ‘수고가 많다’ 등의 말은 고사하고 맡겨 놓지도 않은 ‘내 돈 보따리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로 선수협회의 활동에 방해가 되지 말라’고. 선수협회 창립의 최초 시도자인 최동원 선배와 지금까지 고생한 야구인들을 위해서라도 야구인들은 서로 믿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고로 만들어진 선수협회가 더 이상 참새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길 바란다. 마해영 IPSN 해설위원<ⓒ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대중문화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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