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직장인을 위한 카운슬러

이제 겨우 과장 달았는데 포기 못해...10년 더 버틸테야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한때 KBS 개그콘서트의 '사랑의 카운슬러'란 코너가 인기를 모은 적이 있다. 개그맨 유세윤과 강유미가 각각 남여 역할을 맡아 애인 간에 벌어지는 고민거리들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여성 직장인들을 만나 보면 "자신들도 카운슬러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여자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과 각종 스트레스가 말도 못하다는 것이다. 남자 동료에게 털어 놓자니 이해를 못하는 눈치고, 상사나 후배와 논의하기엔 왠지 껄끄럽다. 친구들을 붙잡고 하소연해 보지만 그때뿐이다. 회사에선 같은 생활의 반복이다. 이래저래 머리만 빠지는 것 같다. 전문가들과 선배 여성 직장인들을 만나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고민과 문제들을 살펴봤다. ◆애는 누가 키우나?=입사 후 여성은 자신의 꿈을 저울질해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마련이다. 글로벌 제약사에서 근무하는 박영양(가명.여.34)씨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두 달 전 출산을 했고, 현재 퇴사 여부를 고민 중이다. "저는 그만두고 싶지 않아요. 근데 시댁도 그렇고 남편도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를 책임져야 하지 않냐고 은근히 눈치를 주더라고요." 그녀는 "내 커리어를 왜 포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딱히 대안이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육아는 여성에게 남은 생의 커리어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가정과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다면 전업주부로 들어서게 된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과 기울인 노력이 모두 사라지는 셈이다. 회사에 남자니 아기는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지 머리가 아프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싶다면 경력을 이어가는 게 맞다"고 강조한다. 쉽사리 직장을 그만두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성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레슬리 베네츠는 "육아는 길어야 10년"이라며 "육아로 직업을 그만두면 나중에는 뭘 할 셈이냐"고 묻는다.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한 김미영(37)씨는 "상황에 맞춰 잘 조절하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육아는 주변에서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중요한 건 자신의 결심과 가족의 지지"라고 강조했다. 나중에 경력을 이어갈 수 있지 않냐고 되묻는 여성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은 길이다. 송현순 커리어케어 상무는 "퇴사하는 순간 내 전문성은 단절되는 것"이라며 "자식을 다 키우고 난 뒤에는 너무 늦다"고 말했다. 두 마리 토끼를 쫓으려면 가족, 특히 남편의 지원이 중요하다. 최소한 남편이 "내 밥은 내가 지어 먹을 테니 경력을 이어가라"고 지지를 해줘야 여성은 자신감을 얻는다. 이은아 커리어케어 과장은 "이런저런 고민에 지쳐 회사를 떠나는 여성이 많다"며 "먼 미래의 자신을 그려보며 현재 어려움을 해결해 가는 게 가장 현명한 길"이라고 전했다. ◆나이 몇살이야?=올 초 취업에 성공한 나주임(가명.여.25)씨는 회사 내 남자들을 보면 이해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남자는 수직적인 관계에 익숙한가 봐요. 처음 만나면 나이부터 물어보고 바로 상하관계를 정하더라고요."남자가 서열을 가리는 게 거의 본능에 가깝다. 그리고 이 본능은 군대를 다녀옴으로써 한 층 더 강화된다. 회사에서 군필 남성을 원하는 건 나름의 책임감을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군대에서 체험했을 위계질서를 더 높게 보기 때문이다. 송 상무는 "군대는 상명하복을 익히는 충성문화 사회다. 직원을 뽑는 회사로선 좋은 거다"고 설명했다. 여성은 다르다. 수직보단 수평 문화에 익숙하다. 그녀들은 수직 관계를 강요하는 게 불편하다. 한 국내 대기업의 여성 임원은 부하들을 거칠게 몰아붙이기로 유명하다. 프로젝트 전반을 스스로 컨트롤하며 팀원들을 이끈다. 그녀를 두고 남성 직원들은 "추진력 있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반면 여성 팀원들은 "솔직히 별로다. 자기 혼자 잘난 것 같다"며 고개를 젓는다. 남녀 특성의 차이가 상사에 대한 평에서도 나타난 셈이다. 여성들은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상하관계, 수직적 관계 등에 억지로 동화되려 노력할 필요는 없지만, 이를 강하게 거부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진 않다. 상하관계는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연결되고 이는 회사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원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송 상무는 "예컨대 여성이기에 회사나 오너에 대한 충성이 좀 부족한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왜 내 평가가 이렇지?=직장 생활 8년차인 송누리(가명.여.34) 과장은 고민이다. 입사 후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업무 평가나 승진에선 남자 동료들에 비해 뒤지는 것 같다. 그녀는 "이런 게 남녀차별 아니겠느냐"며 울분을 토한다. 송씨의 말은 일부 맞고 일부 틀렸다. 일은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데 그걸 알리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송씨는 좋은 제품만 만들고 홍보는 하지 않은 것과 같다. 홍보를 안 하면 소비자가 알 길이 없다. 핵심은 인적 네트워킹이다. 직장 생활은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 간 관계를 통해 이뤄진다. 당연히 그들에게 나를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 커리어케어 이 과장은 "일반적으로 여성은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A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이다"고 잘라 말한다. 남자 직원들은 다르다. 상하 관계 맺음에 능한 이들은 자신의 보스와 친밀하다. 선배, 후배 등과도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인적 네트워킹이 활발하다. 이는 곧 그 사람에 대한 평판으로 연결된다. 전문가들은 "내 일과 관련된 이들과 소통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런 유기적 관계는 좋은 평가가 나올 수 있는 토대"라고 강조한다. 남성은 거시적, 여성은 미시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여성은 직장 생활을 넓은 시야로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송 상무는 "인적 네트워킹을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자신이 약하다 싶다면 인적 네트워킹을 잘하는 이들과 친분을 맺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승종 기자 hanaru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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