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은 송(宋)나라 학자 환오극근이 집필한 벽암록에 등장한다. 용흥사라는 절의 진존숙 스님은 방방곡곡을 떠돌며 선문답을 즐기던 중,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갖춘 인물을 만난다. 그런데 그는 화두를 던질 때마다 알아들을 수 없는 큰소리만 쳐댔다. 기막힌 대답을 기대하고 이런저런 말을 던져보았지만, 큰소리 외에는 돌아오는 게 없었다. 이에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가 아닐까 의심스럽다(只恐龍頭蛇尾)'고 생각한 진존숙이 "위세좋게 소리친 이후 무엇으로 마무리 할건가?"고 물었고 상대방은 답변을 피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용두사미는 처음엔 뭐라도 할 것처럼 기세좋게 나가다 슬그머니 없던 일처럼 꽁무니를 말아 버리는 것을 비꼬는 말이 됐다. 지난 12일 한 달 보름간 진행된 저축은행 조사특위가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하고 활동을 접었다. 영업정지 중인 부실 저축은행 대주주 및 경영진과 결탁한 정관계 유착세력을 발본색원하고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대국민 사과발언으로 막을 내렸다. 무엇보다 국정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인 청문회는 여야의 발목잡기식 증인 채택으로 아예 열리지도 못했다. 부산, 목포, 광주에서 이뤄진 현장조사에서 진상 규명이 여의치 않아 국정조사 무용론이 고개를 들자 문서검증이다, 기관보고다, 정부를 옥죄기 위한 수단을 동원했다. 막판에는 부실 저축은행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의 사실상 손실 전액을 물어주는 내용의 피해자 구제방안을 내놓았지만, 그마저도 포퓰리즘 시비에 휘말렸다. 문제는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린 특위가 그 탓을 정부(금융당국)에 돌리고 있다는 것. 정두언 특위 위원장은 "비협조적으로 일관한데 대한 책임을 꼭 묻겠다"며 날을 세웠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비협조적이라는 표현은 금융당국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특위에서) 원하는 모든 정보를 열람하도록 하는 등 최대한 협조했다"며 "검찰수사가 진행중인 사안의 경우 정보가 유통될 경우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료제공 대신 열람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만약 그 부분을 비협조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금감원 직원들은 올해 휴가를 대부분 반납하다시피하며 국조 자료 준비에 매달려왔다. 수뇌부는 특위 위원의 청사 방문과 국회로의 호출이 언제 있을지 몰라 모든 일을 제쳐두고 비상대기했다. 금융권에서 검사 업무 위축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할 정도다. 지금 금융당국 직원들도 "위세좋게 시작했는데 이제는 무엇으로 마무리 할건가?"라고 특위측에 묻고 싶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이 "너희들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니 용두사미에 적반하장도 유분수가 아닐까 싶다. 조태진 기자 tjjo@<ⓒ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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