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서울이 물폭탄을 맞아 쑥대밭이 된 그저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8ㆍ5 근무제(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를 선언했다. 오후 5시를 조금 넘겨 퇴근하고 저녁 약속을 6시에 잡기로 결심했다며 유연근무를 신청했다. 장관 말대로 그 자신 솔선수범했으니 공직사회에 8ㆍ5 근무제가 확산될까. 재정부 예산실은 지금 한창 내년 예산안을 짜고 있다. 9월 정기국회가 열리기 전에 세제개편안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당장 재정부 직원들이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하는 시기다. 이러니 과천 경제부처에서조차 실정 모르는 소리라는 말이 나온다. 현행 복무규정상 공무원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필요한 경우 유연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 유연근무제는 공무원의 사기 진작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개인ㆍ업무ㆍ기관별 특성에 맞게 근무 형태를 다양화하는 것으로 지난해 7월 말 시작했지만 여태 이용률은 1.8%에 머무르고 있다. 박 장관이 사실상 서머타임제인 8ㆍ5 근무제에 집착하는 것은 일찍 퇴근하면 여가활동이 늘어나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퇴근 시간만 확실히 보장된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연장근무가 다반사인 현실에서 자칫 근무시간만 늘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통근 거리나 육아 등의 사유로 조기 출근이 힘든 경우도 있다. 유연근무를 신청한 공무원 중 상당수가 출근 시간을 늦춘 이유다. 내수 활성화 방안에는 과천정부청사에서 한 달에 두 번 시행 중인 구내식당 휴무제를 중앙ㆍ대전ㆍ광주ㆍ제주까지 확대하는 것도 있다. 이것도 설렁탕과 자장면 등 음식 값이 오르자 한 푼이라도 아끼려 직장 부근 경찰서나 대학 구내식당을 찾는 샐러리맨들이 늘어난 것과 배치되는 아이디어다. 정부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시기와 사회적 여건을 고려해 입안하고 집행해야 한다.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식 아이디어는 정책실패를 야기할 뿐 아니라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국민을 피곤하게 만든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게 중요하지만 수해 지역 방문에 앞서 대구 스타디움에서 당ㆍ정ㆍ청 고위 협의회를 먼저 가진 총리와 한나라당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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