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희성
편집. 장경진
정형돈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가방은 김재원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사실 정형돈이 이렇게 거침없이 패션을 논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에게도 카오스의 시절은 있었다. 은갈치 빛 수트에 빈티지한 버클과 레드 라이닝으로 어깨 끈이 장식된 크로스백을 울러 매고 다니던 시절, 그는 티셔츠는 목이 늘어나게 하고, 신발은 뒤축을 구겨 신어 내추럴한 사용감을 더했다. 비록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한 아방가르드였지만, 정형돈은 농밀하게 자신만의 패션 철학을 키워왔다. ‘빙고 특집’ 당시, 홍대에서 즉석 스타일링에 도전한 그는 자신의 초이스에 대해 “강렬한 무엇. 모럴해저드 하면서 팜므파탈한 옷. 오늘 정말 뜨겁고 싶어요” 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유니섹스 시대에 맞춰 피가 안도는 팬츠를 입고 홍대 거리를 스캔하며 스트릿과 프레타 포르테의 믹스앤매치에 힘썼다. 당시 뱃살을 벨트로, 배꼽을 MP돈의 이어폰잭으로 활용한 그의 과감함은 대다수의 패션 블로거들을 흥분시키는 일대의 사건이었다. 당시의 레전더리한 사건은 그저 추억의 편린이 되어 패션 피플들에게 기억되고 있지만, 여기서 생생하게 살아남은 것은 정형돈의 밸런스에 대한 센서빌리티이다. 그는 유재석에게 같은 패턴의 레깅스를 권하며 “블뤡과 그뤠이”라는 조화를 제안했다. 그에게 패션이란 그저 개인의 심볼이 아닌, 더불어 향유하는 시대의 무드인 것이다. 그래서 정형돈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정재형을 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H3>교감에 키포인트를 준 순수의 시절</H3>정형돈은 익히 정재형과의 패션을 통해 교감을 얘기했고, 이후 처진달팽이와 GG는 그들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정형돈은 정재형을 ‘패션 하시는 분’으로 오해 했다. 베이시스 출신이라는 말에 ‘기타’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형돈이 정재형의 외모에 대해 “진짜 아닌 것 같아요. 태호 PD 밑인 것 같아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 두 사람의 영혼은 랑데부에 성공했다. 당시 정형돈은 곤충 파리를 자신의 코디네이터로 지칭할 정도로 자신의 패션에 대해 좌절하고 있었다. 흰 바지에 색깔 속옷을 입고 뒤쪽을 시스루로 하는 그의 패션은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것이었으나 오뛰뜨 후투르적으로 왜곡되는 그의 패션은 시건방이라는 오해를 종종 사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형돈은 정재형의 파트너가 되는 순간, 거울 속의 에고가 아닌 정재형을 위한 옷입기를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도 아니면서 멋낼 때는 한 가지 바지만 입는 그에게 깊은 소로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악적 완성”과 “패션의 완성”을 거래한 두 사람은 ‘거리깜’ 없이 서로를 탐닉했다. 음악 작업을 위해 술박물관을 찾았던 날, 정형돈은 채도가 낮은 정재형의 옷과 닮은 차림으로 나타났다. 오뉴월의 목도리는 선글라스를 과감히 머리 위로 올려 쓰는 런웨이의 잔다르크 정형돈답지 않은 아이템이었으나 그는 위장을 명목으로 정재형의 제안을 수락하기도 했다. 이후 MT를 갈 때 정형돈은 스카이 블루 데님 셔츠를 입은 정재형을 위해 핑크색 버뮤다 팬츠를 착용했고, 녹음을 할 때 베이비 핑크색 셔츠를 입은 정재형을 고려해 아쿠아 블루 피케 셔츠를 선택하는 등 파트너와의 멤버십을 비주얼화 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경연의 날, G드래곤과 박명수, 이적과 유재석이 서로의 의상이 컬러 블로킹되어 팀 컬러를 만들어내는 패션을 선보인 것이 이러한 정형돈의 방식에 영향을 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정형돈의 패션 제자인 G드래곤은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블루계열의 포켓 치프로 오마주를 시도했다. <H3>옴므파탈을 넘어 리미트 없는 어드벤처의 시절</H3>옴므파탈에서 종을 뛰어넘는 도전의식까지 정형돈의 패션세계는 앞으로도 계속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정작 정형돈은 무대 위에서 자신이 고수해 온 기존의 철학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리허설에서 그는 예상과 달리 온통 블랙과 화이트로 컬러를 배제하고 스니커즈에 네온 컬러의 트렌드를 담아 얼반 시크를 연출했다. 그러나 무대에서 그는 백합을 상징하는 흰 드레스셔츠에 피 빛 상처를 은유하는 붉은 의상을 매치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2010 F/W에 선보인 알렉산더 맥퀸의 유작을 연상케 했다. 화려하지만 고독이 잠재해 있는 그의 의상은 보는 이의 판단을 유예하면서 황홀한 불안감을 유발시키는 일종의 다이너마이트였다. 복수심을 불태우면서 죽은 심장을 예감하는 그 무대가 파소도블레를 추는 댄서의 비장함을 재연해 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그는 백스테이지에서는 재킷을 벗어 그가 늘 경계하는 ‘과한 패션’에서 해방되어 이지한 애티튜드로 바디의 고져스함을 뽐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패션의 종착역, 옴므파탈, 연구대상인 것이다. 마하의 속도로 달리는 에이 클래스 기관차처럼 패션계의 중심으로 돌진하고 있지만, 정형돈은 여전히 말한다. “내 썽에 안 찬다”고. 그래서 그는 지금도 빅뱅을 만나는 것처럼 중요한 자리에서는 잠자리 안경과 더벅머리 가발, 기억조차 나지 않는 바지저고리에 칫솔로 박박 씻은 듯 새하얀 운동화를 신고 알렉산더 왕처럼 웨어러블하고 컴포터블한 ‘그냥 형돈이’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그는 “진실한 사랑은 언제나 삼성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늪에 빠진 메시지를 담아 안내견의 표식 망토를 직접 착용함으로써 종을 초월한 충성심을 표현하는 파인아트적인 패션 작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여전히 그에게 패션 월드는 리미트 없는 어드벤처를 통해서만 정복할 수 있는 위험천만의 정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캐스틱함마저도 선키스트한 기운으로 해석하는 그의 크리에이티브가 있는 한 우리는 패셔니스타 정형돈의 마이웨이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패션계의 알렉산더 임금님인 그에게 우리가 해 줄 말은 오직 이것뿐이다. 옳~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