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나의 캐디편지] 운동화로 만든 'OB티'

우리 골프장은 아웃오브바운즈(OB) 구역이 따로 없습니다.자연보호구역으로 설정돼 볼이 들어간 지점 뒤쪽에서 1벌타 후 세번째 샷을 치면 됩니다. OB가 없으니 당연히 OB티도 없습니다.하지만 어쩌다 내기를 심하게 하시는 고객님과의 라운드에서는 평소에 없던 OB가 생겨버립니다. 고객님들께서 임의로 만드시는 거죠. 그런 라운드에서는 저희 캐디들은 바짝 긴장을 하게 됩니다. 캐디들이 최고의 서비스정신을 발휘하더라도 진행이 늦으면 어쩔 수 없이 고객님과의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객님들이 제일 싫어하는 캐디 1위는 아마도 빠른 플레이를 독촉하는 캐디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간혹 귀여운 멘트나 행동으로 고객님께서 어쩔 수 없이 도와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캐디들도 있습니다. 어느 한 캐디의 일화입니다. 홀마다 OB를 내시는 고객님들과의 라운드였습니다. 앞 팀은 점점 멀어져 가고 뒤 팀은 바짝 따라붙는 상황에서 내기를 심하게 하시는 고객님들과 홀마다 잠정구를 치며, 또 사라진 볼을 찾으며 힘겹게 앞 팀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살벌한 분위기에 '도와 달라'는 말 한 마디도 못하고 등줄기에 땀만 연신 흘리며 뛰어다녔죠.이곳저곳 뛰어다니는 캐디가 불쌍했는지 한 고객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언니, 여기 사장님한테 OB티를 만들어 달라 그래!" 그러자 캐디는 참을 만큼 참았다는 기세로 고객님께 한마디 쏘아 붙입니다. "OB가 없으니까 OB티가 없죠!". 분위기는 다시 썰렁해지고 다음홀 티잉그라운드에서는 OB나지 말라고 애타게 속으로 기도했건만 야속하게도 네 분 모두 OB가 나버렸습니다.다시 네 분이 티 샷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캐디는 '에라, 모르겠다'며 고객님의 티 샷을 막고 세컨드 샷 지점에 OB티가 있다며 고객님 네 분을 동반하고 무작정 이동했습니다. 고객님들이 "여기 OB티가 어딨어?"라며 두리번거리십니다.그러자 그 캐디는 페어웨이 양쪽 끝으로 쏜살같이 뛰어가 신고있던 하얀 운동화를 벗어 놓고는 맨발로 고객님께 걸어가 "여기가 OB티예요. 여기서 치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고객님들은 그러자 캐디의 어이없는 행동에 그저 배꼽을 잡고 웃으며 앞 팀을 기다리기까지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손은정 기자 ejso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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