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사비나 경희대학교 한의대 교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폐에서 발견된 6.5㎝의 침을 보았는가. 한의원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규격품의 길이 40㎜, 직경 0.20~0.25㎜보다 5㎜가 더 길고 굵기도 훨씬 두껍다. 이 침을 누가 노 전 대통령에게 시술하였는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노 전 대통령이 침 시술자를 밝히지 않고 있다. 한의사협회가 2만여 회원의 병ㆍ의원을 자체 조사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을 진료한 곳은 서울의 S병원 1곳뿐이며, 이곳에서도 침 시술은 하지 않고 6∼7년 전 약 처방만 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렇다고 노 전 대통령의 폐 속에 있었던 침이 한의사에 의해 시술되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자신을 '노태우 대통령 수지침 치료사'라고 소개한 사람이 있어 경력을 살펴보니 한의사가 아니었다. 의료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의학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겨 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일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지도층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의과대학에서는 임상 침구학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초 경락경혈학을 배우게 되는데 실습시간에 가장 먼저 위생실습으로 손 씻는 연습과 더불어 무균침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익힌다. 인체해부학과 경락경혈학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임상 침구학에 들어가므로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의사국가고시를 거쳐 한의사 자격을 얻은 한의사라면 침이 폐에 들어가도록 시술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한의계에서 노 전 대통령이 침 시술자를 밝혀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만약 그 사람이 한의사라면 한의사 면허를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정부는 대통령 한방주치의를 내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처음 도입되었으나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양방주치의만 임명하였다가 지난 4월에 이르러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류봉하 원장(62)을 대통령 한방주치의로 결정한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에 한방주치의가 있었다면 그의 의료진 선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불법 무자격자일수록 자신을 과대포장하며 무리한 치료술을 내세워 환자를 현혹한다. 한국의 한의사는 100% 한국에서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의사국가고시를 통해 배출된 고급인력이다. 외국 대학을 나왔다느니 국제 자격증을 취득했다느니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느니 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나 통하는 말로 한의사계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은 불법 무자격자입니다'라고 광고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외국에서 최소 60달러에서 120달러 하는 침 시술을, 한국에서는 단돈 4000~5000원을 들고 가면 최고급 의료인에게 침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20만원을 주고 중풍을 예방한다는 복학을 따겠다고 외제차에 아줌마 삼삼오오가 몸을 싣고 가서 불법 무자격자에게 자신을 맡기는 일을 했다고 한의대 재직교수 앞에서 아무 수치심 없이 떠벌리는 사람도 있는 실정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불법 무자격자의 혹세무민은 더욱 활개를 칠 것이므로 의료 소비자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신의 진료를 누구에게 맞길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다시 한번 노태우 전 대통령께 부탁한다. 누가 그 침을 시술하였는지를 명명백백히 밝혀 국민의 진료 선택에 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임 사비나 경희대학교 한의대 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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