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역할론

'4ㆍ27 재보선' 패배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 안에서 '박근혜 역할론'이 분분하다. 처음 나오는 얘기는 아니다. 당이 어려울 때마다 그녀가 전면에 등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2009년 4월 재보선 참패 후에도 그랬고 지난해 6월 지방선거 패배 때도 그랬다. 그 때마다 그는 알듯 모를듯한 미소로 비켜갔다.상황이 예전과 좀 다르긴 하다. 당의 면모를 일신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 패배가 뻔하고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도 빨간 불이 켜질 것이라는 현실적 고민이 있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서 어려움에 빠진 당을 언제까지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는 당 안팎의 압력도 역할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역할론은 잦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선 역할론 자체가 갖는 한계성 때문이다. 그가 대표로 복귀한다고 해서 민심이 달라질 것인가. 민심 이반은 이명박 정부의 민생 경제 실패, 끝없는 당내 갈등과 분열에 기인한 것이다. 대표 얼굴이 바뀐다고 민심이 돌아설 상황이 아니다. 원칙과 신뢰의 문제도 있다. 한나라당 당헌 당규는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려면 대선일 1년 6개월 전에 선출직 당직에서 물러나도록 돼있다. 박 전 대표가 지금 대표가 된다는 건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나 같다.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당헌 당규를 고쳐 당권과 대권의 겸직을 허용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그녀가 특정인을 위해, 그 것도 자신을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일에 고개를 끄덕이겠는가. 대권 가도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박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이나 당 대표를 맡을 경우 이 대통령에게 갈 유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친박계의 우려가 그 것이다. '청와대가 호루라기를 불면 그대로 따라하는' 다수의 친이계가 흔들기에 나설 가능성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의 공격이 박 전 대표에게 집중되는 상황도 득보다는 실이 클 것이다.그리고, 따지고 보면 총선 패배가 꼭 박 전 대표에게 불리할 것으로 단정할 일만도 아니다. 지난 세 차례의 총선과 대선 결과를 보자. 1996년의 15대 총선에서 다수당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치러진 대선에서 당선된 김대중 후보는 제1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출신이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다수당이었지만 2002년 대선에서는 야당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또 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승리했지만 2007년의 대선에서는 역시 제2당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이겼다. 웃자고 하는 얘기겠지만, 시중에는 총선에서 지는 당이 대선에서 이길 것이라는 '카더라 통신'이 떠다니고 있을 정도다.박 전 대표는 자신의 행보 하나하나를 대권 가도와 떼어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손익을 따져볼 때 역할론은 부정적 측면이 더 커 보인다. 지금 전면에 나설 이유가 하등 없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론에 말을 아끼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정치는 살아 숨 쉬는 생물'이라고 앞일을 장담할 수는 없다. 여건이 변하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지난해 8월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지금까지 그 합의가 얼마나 잘 지켜져 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지켜질 것인지, 박 전 대표가 납득할 수 있다면 역할론이 힘을 받게 될 것이다. 박근혜 역할론의 열쇠는 박 전 대표가 아니라 바로 이 대통령이 쥐고 있는 셈이다. 가능성은? 물론 낮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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