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와 워크아웃 사이

기촉법 일몰로 건전한 기업회생 막는 채권단… 법정관리로 몰리는 기업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에 월드건설은 채권단의 요구에 밀려 역삼동 사옥을 처분했다. 워크아웃 개시 이후 우량 PF 사업장과 사이판리조트 등의 자산을 매각했다. 그런데도 결국 법정관리 길을 걷고 있다. #진흥기업이 워크아웃에 좌초할 위기에 처해 있다. 진흥기업 채권단이 워크아웃 추진을 앞두고 효성에 무리한 요구를 해서다. 효성은 진흥기업의 대주주다. 진흥기업 채권단은 효성에 백지수표를 요구했다. 채권은행자율협회나 주채권 은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조치에 조건 없이 수용하라고 요구한 것. 공동관리가 중단되면 신규자금과 관련해 발생한 손실을 분담하겠다는 확약서도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업계 관계자는 “효성그룹은 2008년 진흥기업을 인수한 후 조속한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며 “대주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인수자금을 포함해 모두 4000억 원의 추가 자금을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효성그룹은 워크아웃 진행 중에도 부족자금이 필요해 550억 원을 긴급 투입하는 대주주로서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채권단이 효성에 확약서를 요구하는 것은 대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시키는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채권은행이 부실기업의 신용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기업 쪽 의견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11월24일 국회 임시회의에서 워크아웃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이다. 채권단인 금융권이 슈퍼 ‘갑’의 입장에서 워크아웃을 진행하면서 기업의 성장 동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에 관심이 쏠렸다. 기촉법은 채권단의 75% 이상이 찬성하면 워크아웃을 실시토록 한 ‘한시법’이다. 지난 2010년 말로 적용시한이 마감됐다. 지난해 말 기촉법의 일몰로 채권단 100%가 찬성해야 부실기업의 워크아웃을 실시할 수 있게 된다. 기촉법의 일몰로 워크아웃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채권단 중 일부 저축은행이 찬성하지 않으면 워크아웃을 진행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최근 건설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 금융권 PF 대출잔액은 38조7000억 원. 이중 저축은행이 12조2000억 원을 차지한다. 저축은행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PF대출을 연기해 줄 여력이 없다. 법정관리 부실경영 면죄부로이런 상황에서 채권단 100%의 찬성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어려워진 워크아웃보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편리하다. 법정관리는 법원 관리 아래 진행되는 기업 구조조정 절차다. 해당 기업을 살리는 게 청산할 때 가치보다 높고 회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진행된다. 더군다나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다면 경영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부실경영이 재산의 유용이나 은닉 등의 중대한 책임이 아닌 경우 기존 대표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토록 규정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쉽게 법정관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 18일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을 통과시켰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것. 이번에 국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기촉법 일부개정안은 유효기간을 2013년 12월31일까지 3년간 연장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촉법은 2001년에 제정된 법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탓에 만들어졌다. 대기업의 연쇄도산이 심각해진 상태였다. 시간을 늦출 수 없었다.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채권금융기관의 신속한 결정을 돕기 위해 제정됐다. 채권단 75% 이상의 동의만으로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토록 한 것이 핵심. 워크아웃 추진 과정에서 일부 채권금융기관의 무임승차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금융기관간 공조체제를 유도하고 구조조정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당시에는 2005년이면 구조조정 관행이 정착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2003년 5월에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현대건설의 워크아웃 과정에서다. 주 채권 은행인 외환은행이 교보생명과 제일화재, 동양화재에게 출자전환의 이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3개 금융기관은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의결에 따른 출자전환을 이행하지 않았다. 2005년 4월 서울고등법원은 협의회의 의결에 반대하는 금융기관에게 의결사항을 이행토록 강제하는 것은 사유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외환은행이 소송을 취하하면서 2006년 12월 위헌법률심판도 결론 없이 종결됐다. 기촉법은 2006년 이후 시한이 만료되면서 효력을 상실했다. 당시 현대LCD가 채권금융기관들끼리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2006년 2월 제2금융권이 120억 원의 채권을 회수하면서 부도가 발생, 워크아웃이 중단됐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하자 2007년에 기촉법을 다시 입법했다. 효력 만료 시한을 2010년 말까지 연장했다. 기촉법은 2010년 이후 자동 폐기됐다. 역사는 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2008년 미국발 국제 금융 위기 이후 국내 기업도 예외 없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건설업체의 타격이 컸다. 금융권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업·금융권, 기촉법 연장 요구최근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이 기촉법 재입법의 촉매제가 됐다. 법정관리 통보에 기업어음(CP) 투자자의 항의가 빗발쳤다. PF 만기 연장에 차질을 빚은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이 잇따라 법원 문을 두드렸다. 채권은행들은 금융시장 안정과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기촉법 연장을 주장했다. 기촉법 일몰로 구조조정 대상 건설사들이 법원으로 몰려가면서 시장이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기업들의 아우성 소리도 들린다. 채권은행이 너무한다는 목소리다. 채권은행의 요구로 알짜 부동산과 사업장을 처분한 곳이 있다. 인력 구조조정도 받아들였다. 그런데 채권 회수를 둘러싸고 주 채권은행과 기타 채권은행이 밥그릇 싸움만 벌이고 있다. 기업의 성장 동력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하소연이다. 기촉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가장 큰 성과로 하이닉스와 현대건설을 들 수 있다. 워크아웃이 잘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주 채권은행과 다른 채권은행이 자사 이기주의 때문에 삐거덕거린 적도 있다. 채권금융기관이 워크아웃 기업에 신규여신 취급을 거절하거나 여신한도를 축소하면서 기업의 경영 정상화를 방해하기도 했다. 워크아웃 개시 후 한도거래 대출금 잔여 한도에 추가 취급 거절이나 한도 축소를 한 사례도 있다. 보증기관들이 협의회 결의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부당 행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일부 보증기관은 채권신고를 이행하지 않거나 신규자금 지원이나 채권재조정시 특혜를 요구한 적도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구기성 수석전문위원은 “기촉법의 효력 연장 문제는 기업을 포함한 금융권과 법조계가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며 “워크아웃제도가 갖는 효용성과 기업 구조조정의 지속적인 필요성, 기촉법의 위헌성 문제점들을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알짜 부동산과 사업장을 파는 워크아웃보다 경영권이 보장되는 법정관리가 더 매력적일 것”이라며 “효성은 법정관리가 아니라 워크아웃을 진행하는데 채권단이 자기들 잇속만 챙기는 것은 문제”라고 설명했다.이코노믹 리뷰 김경원 기자 kwkim@<ⓒ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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