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정보인(67ㆍ사진) 전 연세대 작업치료학과 교수의 운명을 바꾼 만남은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12살짜리 중증 장애 아동과의 만남은 병동에서 이뤄졌다. 정 전 교수가 병원을 찾았을 때, 아이의 몸은 침대에 묶여 있었다. 얼굴은 그나마 보자기에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물거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부러 토를 해 이렇게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 전 교수는 아이가 한 번 삼킨 음식을 꺼내 다시 먹는 행위에 집착한다는 걸 눈치챘다. 토를 해봐야 먹을 수 없다는 걸 아이에게 인식시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이때부터 정 전 교수는 아이가 토를 하면 토사물을 곧장 치워버렸다. 아이는 '음식'이 자꾸 사라지니까 토를 하되 뱉어내지 않고 입에 머금었다가 도로 삼키는 일을 반복했다. 이럴 때 정 전 교수는 아예 아이의 입을 벌려 토사물을 닦아내버렸다. 정 전 교수는 아이에게 '숟가락 건네주기' 훈련을 같이 시켰다. 지시대로 숟가락을 잘 집어 건네주면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로 보상해줬고, 토를 하는 등 말을 안 들으면 모든 보상을 거뒀다. '올바른 행동엔 보상이 따른다'는 걸 학습시키고 문제행동을 그만두게 만드는 하나의 치료법이었다. 1달간의 꾸준한 보살핌 뒤에 아이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1일 서울 중구 아시아경제신문을 찾은 정 전 교수는 기자를 만나자 이 때의 일화를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증 장애 아동을 치료하게 된 계기를 묻자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장애 아동이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걸 보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며 "이게 바로 내가 특수교육을 공부한 뒤 중증 장애 아동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정 전 교수는 이어 "정신연령이 2~3세 수준에 머물고 무차별로 자해 행동을 하는 아이를 중증 장애 아동으로 분류하는 데 이런 아동을 치료하는 게 바로 '응용행동분석'"이라며 "응용행동분석의 의미는 '통제'가 아니라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가르침'에 있다"고 설명했다.
1983년부터 27년 동안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지난해 여름 퇴임한 정 전교수는 1993년엔 '발달장애아행동연구소'를 열어 전문 치료사를 양성하는 일에 뛰어들었고, 2007년엔 서울시립어린이병원 '자애행동치료실'을 열기도 했다. 정 전 교수는 1990년부터 20년 동안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과 함께 중증 장애 아동 요양원인 '천사들의 집'을 찾았고, 지난 1월 그동안의 치료 사례를 모아 '동영상으로 보는 응용행동분석 치료'(청람 출판사)를 펴냈다. 정 전 교수는 이와 관련해 "중증 장애 아동을 치료하는 법은 사실 굉장히 간단한 데, 방법을 배우려고 해도 배울 곳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 책이 중증 장애 아동을 치료하려는 부모님과 치료사들에게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성정은 기자 jeu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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