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취임 후 그를 처음 본 것은 2009년 10월 추석 때로 기억된다.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서울대의 위상을 높였던 노력을 평가받아 국무총리로 임명장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다. 당시 정운찬 총리는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을 방문, 희생자 영정에 조문한 후 "총리로서 사태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그 다음 달 정 총리는 실내사격장 화재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일본인 희생자 유가족 앞에서 무릎을 꿇고 위로했다. '총리가 범법자를 위로하는 게 맞느냐, 총리가 일본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조선시대 사대주의 외교에서나 볼수 있던 것'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 총리는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현장 총리로 국민들에게 인식됐다. 총리 스스로 국가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면서 용기있는 행동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문제 해결 여부를 떠나 정 총리는 잘못을 인정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현장에서 찾으려 했던 점은 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동반성장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정 위원장의 모습에서는 현장을 찾아 해결의 실마리를 찾던 그 열정을 찾아볼 수 없다. 정 위원장이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로 재계는 물론 정ㆍ관계까지 시끄럽다. 초과이익공유제는 25명에 이르는 동반성장위원들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정 위원장이 갑자기 거론하는 바람에 시작부터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결국 재계, 정계, 관계까지 논란에 가세하면서 사회 구성원 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이후 정 위원장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그 답지 못했다. 문제가 발생한 용산, 부산 등지에 달려가 철거민, 일본인들을 만나 대화하며 해결책을 찾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정 위원장은 "경제학 책에서 배우지도 못 했다"는 말로 초과이익공유제에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한 이건희 회장을 만날 의향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구차해보인다고 일축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이익공유제는 애초부터 틀린 개념이다. 그런 말 그만했으면 한다"고 했을 때도 정 위원장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무실에서 "나를 직접 만나든지 전화라도 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런 방식으로 얘기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만 했을 뿐이다. 과거 정 총리 시절 모습이라면 문제 해결을 위해 한걸음에 달려갔을 터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달라졌다.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을 때 재계와 정부 관계자를 직접 찾아가 만나 토론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했어야 한다. 그것도 자신이 한 발언으로 생긴 갈등이라면 더더욱 그랬어야 한다. 그게 그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재계, 정부 관계자 위에서 군림하려 했다. 자신의 틀에 재계, 정부를 맞추려 했다. 구차해보인다며 삼성 이 회장을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정부에 '과연 동반성장의지가 있으냐'며 사의표명으로 대응했다. 현장에서의 문제 해결보다는 의자에서의 포기를 선택했다. 자리에 앉아 입으로만 얘기하면서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하는 정 위원장의 모습에서 과거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장을 찾던 정 총리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된다. 잘못을 과감히 인정하고, 때로는 무릎까지 꿇었던 용기 있던,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정 총리의 모습은 어디 갔나. 정 총리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 한다면 차라리 그 짐을 빨리 내려놓는 것이 낫다. 노종섭 산업2부장 njsub@<ⓒ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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