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혼자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있어/힘든 일을 이겨내면 언젠가 보이는 것이 있어/그러면 너는 지금보다 분명 멋질꺼야' <P짱은 내 친구>라는 일본 영화의 초등학교 6학년 주인공들이 졸업식 날 마지막으로 함께 부르는 노래다. '1년 동안 잘 키워 잡아먹자'며 담임선생님이 아기 돼지 한 마리를 교실로 데려온 이후, 아이들은 돼지를 키우는 즐거움에 푹 빠져 P짱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하지만 졸업이 다가오면서 아이들은 '돼지를 후배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식육점으로 보낼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정든 돼지와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생명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밀가루 뿌리기, 교복 찢기 등으로 얼룩진 현실 속 '알몸 졸업식'과는 상반된다. 학생들의 일탈을 감시하고 처벌하기 위해 경찰까지 동원되는 마당에 '지금과는 다른 졸업식'을 만들기 위해 직접 나선 학생을 찾아갔다. 서울 구로구 유한공고(교장 서성원) 졸업생 양상웅(19)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양상웅(18) 유한공고 졸업생이 졸업식을 앞두고 실습시간에 만든 집 모형을 보여주고 있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으니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할게요. 장학금도 타서 엄마 혼자 고생하지 않도록 잘 하겠습니다" 10일 오전 치러지는 졸업식에서 상웅이가 어머니 김혜경(51)씨에게 보낼 영상메시지다. 상웅이는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자신을 비롯한 반 친구들을 한 명씩 캠코더 앞에 앉혀 '부모님께 보내는 감사편지' 동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덩치 큰 남자애들이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쑥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친구부터 말하던 중 울컥하며 눈물을 보이는 친구까지 각양각색이다. 상웅이는 몇 번씩이나 다시 찍겠다고 조르는 친구들을 보며 졸업생들이 진심을 다해 동영상 촬영에 임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기쁜 졸업식 날, 비어있는 그의 아버지 자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지난해 세상을 등진 아버지와 이별의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픔은 곧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살아계실 때 열심히 효도해야겠다'는 다짐으로 굳어졌다. 상웅이는 이날 졸업식에서 영상편지로 어머니께 이런 다짐을 보여드린다. 그가 준비한 UCC동영상에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과의 추억이 담긴 동영상도 만들었다. 제주도로 떠난 수학여행, 학교 등나무에서 벌인 삼겹살 파티, 닭싸움에 신난 가을 운동회 등 서른 명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영상 속에 차곡차곡 담겨있다. 친구들과 부모님들은 울고 웃으며 유한공고에서의 3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상웅이는 "고등학교를 떠나려니 즐겁기도 하면서 한편 두려운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성년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새롭게 시작하는 대학생활에서는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해야하는 만큼 더 열심히 배우겠다"고 말한다. 상웅이가 졸업식 때 받는 가장 큰 상은 바로 '건축공학가'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는 다음 달 충북대 건축학과에 입학한다. 유한공고는 졸업생의 57%가량이 취업을 선택하는 특성화고등학교지만, 상웅이는 대학진학을 목표로 했고 결국 그 꿈을 이뤄냈다. 상웅이를 건축공학가의 꿈으로 이끈 건 미국 콜로라도 주의 공군사관학교 안에 위치한 예배당(Cadet Chapel)이다. 고3 여름방학 때 동문회의 지원으로 미국 어학연수를 가게 된 그는 이 예배당의 아름다움에 빠져 '건축공학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상웅이는 "뾰족하게 솟아있는 예배당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학교의 도움이 없었다면 예배당을 직접 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을 3년 동안 길러준 학교에 고마움을 나타냈다. 건축공학가는 건축가가 설계하고 디자인한 건축물을 실제로 만들 수 있는지 판단하고 보완하는 역할을 맡는다. 상웅이는 "건축공학가가 설계도를 현실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이런 내용들을 담아 '미래 이력서'를 만들었다. 자신의 10년 후, 20년 후를 미리 내다보고 상상의 이력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상웅이를 비롯한 졸업생 248명 전원의 미래 이력서는 10일 치러질 졸업식장 곳곳에 전시된 채 학부모와 그 가족들을 맞이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이상미 기자 ysm125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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