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낙규기자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지난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때 특전사 요원들은 무장공비 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북한의 국지 도발에는 특전사 등 특수부대들이 적역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특전사의 실력은 해외서도 인정받는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특전사에 반해 한국의 원자력발전소를 수입하는데 한 몫했다. 특전사는 앞으로 UAE군이 경비하는 알아인 지역의 특수전학교 영내에 머물며 UAE 특수전 부대에 대한 교육훈련을 지원하고 각종 연합훈련에 참여할 예정이다.
'안되면 되게하라'라는 특전사의 강인함을 엿보기 위해 지난 19일 독수리부대 예하 악돌이대대 훈련현장을 찾았다. 기자가 경기도 양평군 각시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그곳은 아무도 없었다. 기자가 "특전사 장병들은 어디있냐"고 질문하자 부대관계자는 "이곳이 특전사가 훈련장소가 맞다"며 "지금도 이곳에 있으며 1시간 후면 모두들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산골짜기를 따라 바람이 거세지고 산밑 그늘이 점점 더 넓어진 오후 5시 정도가 되자 위장한 장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병들은 하나둘씩 땅위 낙엽을 걷어내고 땅속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특전사 장병들은 주간에는 이동을 하지 않고 땅을 파고 1~3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잠적호를 만들어 그안에서 감시정찰을 한다. 잠적호 위에는 낙엽을 깔아놓는 등 주변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기자가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날 특전사 장병들은 8박9일의 훈련중 7일차였다. 이날은 적진 한가운데 투입해 가상의 목표물을 파괴하는 임무를 훈련하고 있었다. 적진에 침투하기 위해서는 전방경계조, 본대, 후방경계조로 구성되며 한조당 3~4명이 배치된다. 어둠이 짙게 깔리자 가로, 세로 각각 3m크기의 잠적호안에서 장병들이 나와 위성안테나를 펴기 시작했다. 통신을 통해 장병들은 현재의 위치, 첩보보고는 물론 지휘본부에 보급품도 요청했다.
통신을 마친 장병들은 잠적호를 정리하고 40kg군장을 메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전사가 이동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인적이 없는 길이다. 기자도 군장을 메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고 출발했지만 눈이 쌓인 산을 무턱대고 오르는 것이 내심 걱정됐다. 걱정은 곧 현실이 됐다. 산턱에서 눈을 밝고 넘어지기를 몇번이나 반복하자 장병들은 소리를 내지말라며 눈치를 줬다.
정민교 중사(특부후 145기)는 "적진 한가운데 있다고 가정한 훈련에서는 담배 꽁초하나에 모든 장병들의 동선도 발각될 수 도 있다"며 "움직임 하나하나까지도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30분밖에 이동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입김이 맺힌 안면마스크는 딱딱하게 얼기 시작했다. 이날 기온은 영하 19도. 체감온도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진 상태다. 어둠사이로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때리는 것은 물론 숨은 턱밑까지 차올라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대원들은 침투해야할 목표시간까지 얼마남지 않았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출발 3시간이 지난 밤 12시가 다가오자 무거운 군장에 어깨와 무릎은 끊어질듯 아파왔다. 중대장은 베낭을 풀어 나눠 짊어지자고 했다. 하지만 중대원들의 목표시간 도달에 지장을 줄 것같아 결국 기자는 행군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왔다.
다음날 새벽5시. 가상의 목표물인 컨테이너 박스에서 1km떨어진 잠적호 대기중인 기자에게 장병 3명이 웃음을 보이며 다가왔다. 밤새 인적없는 산속을 뚫고 온 것이다. 이들은 가상의 목표물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폭발물을 설치하고 미션을 성공시켰다.
중대장 이성주 대위(학군 42기)는 "이번 훈련이 8년 군생활중에 가장 추운날씨속에 진행된 훈련이었다"며 "지난해 천안함, 연평도 등 큰 사건을 겪은 후 장병들의 훈련각오는 그 어느때보다 강하다"고 말했다.
미션을 성공시킨 장병들은 어제 위성통신을 통해 보급품을 받기로한 장소로 이동했다. 골짜기 한가운데 8명이 대원이 투입되고 가상의 항공기에 투하장소를 알리기 위해 4명의 장병들이 자신의 키만한 표지식별인 빨간색천을 폈다. 대공포판이라 불리는 빨간색천은 항공기에서 잘보이게 하기 위해 천의 밑을 다리로 고정하고 위쪽은 양손으로 위로 치켜올린다. 또 허리를 굽혀 천이 하늘을 보게 했다. 5분정도 자세를 유지하자 밤새 찬바닥에 누워서 그런지 뼈 마디마디가 아파왔다.
이날은 훈련인 관계로 수송기보급이 아닌 차량보급으로 진행됐다. 보급품이 보급되자 장병들은 재빨리 낙하산을 접고 보급품을 나르기 시작했다. 낙하산은 접어 땅속에 뭍어 흔적을 없앴다. 발자국은 물론 낙하산이 떨어진 곳까지 눈으로 덮어 흔적을 없앴다. 특전사는 적진에서 보급품이 끊어질 경우를 대비해 주변의 계절별 열매나 곤충, 동물를 섭취하는 훈련도 받는다고 한다.
주임원사 김정석원사(모병8기)는 "동계훈련은 특전사에게 가장 힘든 훈련중에 속한다"며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물론 훈련준비도 필수여서 훈련에 임하기 전에 모든 장비를 직접 챙긴다"고 말했다.
보급품을 받은 장병들과 함께 인근 잠적호로 돌아와 전투식량을 먹었다. 차디찬 바닥에 기대어 누워 먹는 전투식량은 꿀맛은 아니었지만 전우애로 뭉친 소수정예 최강 특전사와 먹는 밥맛은 그 누구와 먹는 밥맛보다 좋았다.
북한의 특수부대수는 2년전에 비해 2만명 늘어난 20만명이다. 수적으로 열세인 특전사에 우려되는 마음을 갖고 훈련에 참가했지만 든든한 마음을 갖고 산을 내려왔다. 이들이 있어 우리군은 아직도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