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 중앙대학교 산업경제학 교수
지난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타결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2월13일 협상의 주역인 통상교섭본부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국 농업의 문제점은 농민의 '도덕적 해이'와 '다방농민'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다방농민'이란 농사는 짓지 않고 다방에서 공무원과 어울리며 정부 보조금을 챙기는 부도덕한 농민을 지칭하는 말이고, '도덕적 해이'란 경제주체들이 자신들이 빠져나갈 구멍만 찾고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도덕적, 윤리적, 경제적 태도 및 행동상의 위험 또는 위협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니, 통상교섭본부장은 농민을 문제가 많은 집단으로 매도한 셈이다.보조금이나 정부 지원금 몇 푼 챙기는 다방농민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이런 자들은 적발해 엄벌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농민이 있다면 330만명의 농민들 중에서 도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대다수의 농민들은 그저 성실하게 농촌에서 농사를 지을 뿐이다. 농민 전체를 도덕적 해이 집단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고 농민으로서는 억울한 일이다.문제는 선량한 대다수의 농민들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통상교섭본부장이 그렇게 쉽게 발설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통섭교섭본부장은 이 나라의 대외 통상협상의 대표로서 수많은 FTA 등을 협상하는 공인이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FTA 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을 수밖에 없는 분야가 농업부문이다. 농민들은 FTA가 맺어 질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게 돼 있고 민감할 수밖에 없다. 피해가 발생하고 손해를 보는데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국가 전체를 위해 FTA를 해야 된다고들 하니 그렇게 이해는 하면서도 당장 피해를 보게 돼 있는데 민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따라서 농업ㆍ농민에게는 피해가 되는 대외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고위층이 농민을 이런 식으로 폄훼하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통상교섭본부장이 국가를 대표해 어쩔 수 없이 협상을 한다 하더라도 피해를 보는 계층이나 산업이 있다면 이를 아우르고 설득하고 대책을 세워나가도록 하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지, 오히려 앞장서서 다방농민이니 도덕적 해이니 운운하는 것은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스럽게 하는 발연이 아닐수 없다.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쓴 소리를 하려면 차라리 이익이 발생한다는 자동차나 전자관련 대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농민들을 도덕적 해이 집단으로 몰고 가기 전에 진정으로 우리 사회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곳은 어디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금융위원회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996년 외환위기 이후 2010년 10월 말 현재 총 168조6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이 중 59.6%인 100조5000억원만이 회수됐다고 한다. 이러한 천문학적 공적자금의 대부분은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투입됐음은 물론이다.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지원받고도 금융업계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은 수억원, 수십억원에 이른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도덕적 해이다. 뿐만 아니라 통상교섭본부장이 소속돼 있는 외교부의 경우 장관이 물러나기까지 했던 정부기관의 몰염치한 자녀특혜 채용이 도덕적 해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방농민이니 도덕적 해이니 하여 농민을 이상한 집단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더 크고 넓게 퍼져 있는 소위 리더집단의 도덕적 해이가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는 것이고, 그것부터 바로잡아야 공정사회니, 국가비전이니 하는 것들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 통합도 이뤄질 수 있다. 윤석원(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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