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수원=조범자 기자]그의 머릿 속엔 94년 미국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가 있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녹색 그라운드에 나선 순간이다. 17년 국가대표 생활 중 스스로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폴란드전도 잊을 수 없다.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표 골키퍼'로 인정받기 시작한 순간이다. 스페인과 8강전서 신들린 선방으로 호아킨의 스페널티킥을 막아낸 뒤 두 손을 번쩍 들어 꽉 쥐어모은 장면은 5000만 국민 모두의 머리와 가슴 속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 바로 어제 일처럼.국가대표 골키퍼 이운재(37ㆍ수원 삼성)가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서 17년간 정든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자신의 A매치 132경기 출전 째였고 장소는 공교롭게도 소속팀 수원의 안방이었다. 이날 선발 출전한 이운재는 교체되기 전까지 27분간 어느때보다 큰 목소리로 선수들을 독려했다. 평소보다 더 크게 눈을 부릅떴고 크게 팔을 휘저으며 후배들에게 수비 위치를 지시했다. 때로는 마지막 A매치를 가슴 속에 가득 담으려는 듯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아쉽게도 그는 마지막 국가대표 은퇴경기에서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1-0으로 앞서가던 전반 26분 나이지리아 피터 오뎀윙기에에게 동점골을 내주고 만 것. 그리고 이운재는 조광래 대표팀 감독의 교체 사인에 따라 그라운드를 나왔다. 크게 팔을 올려 박수를 치며 관중들의 환호에 화답했다.눈물 많은 이운재는 결국 하프타임 때 열린 국가대표 은퇴식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아내와 두 딸, 후배 GK 정성룡과 김영광의 축하꽃다발을 받은 이운재는 "너무 행복해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뛰었고 그럼으로써 많은 팬여러분에게 사랑 받았습니다. 많이 행복했습니다"고 했다.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관중의 아쉬움 가득한 함성이 터지자 이운재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운재는 그러나 맏형답게 금세 감정을 추스르고 후배들에 대한 성원을 당부했다. 이운재는 "이제 저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지만 앞으로 많은 후배들에게도 많은 응원과 애정어린 눈빛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박지성과 박주영 등 후배들은 한사코 마다하는 이운재를 팔을 이끌어 힘차게 헹가래쳤다. 그제서야 이운재는 국가대표 최고 수문장의 무겁고도 오랜 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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