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지하철 여성전용칸 풍경. 남성들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이집트에 지하철이 있었어?"얼마 전 이집트를 다녀간 한 친구가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이 친구는 일주일간 이집트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지하철이 있는 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반이 약한 중동 국가의 경우 지하철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이집트와 UAE, 이란 정도다. 외국인들이 이집트에 지하철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때문에 외국인들의 지하철 이용률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곳곳에 생소한 아랍어 표기가 난무한 데다, 택시 등 다른 대중교통의 요금이 저렴한 것도 외국인들이 지하철 이용을 꺼리게 만든 이유 중 하나다. 필자 역시 지난해 처음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지하철을 이용한 횟수는 고작 한 번밖에 없었다. 이집트의 지하철 요금은 거리에 상관없이 왕복 2£E(이집트 파운드)이다. 원화로 따지면 460원 정도로, 한국의 절반 가격에 그친다. 아직 교통카드 사용은 도입되지 않아, 예전 한국처럼 매표소에서 종이 승차권을 구입해 써야 한다. 한국처럼 열차 도착을 알려주는 전광판도 없다. 배차 시간은 2~ 3분 사이로 빠른 편이며, 출퇴근 시간대에도 차이는 없다. 이집트 지하철의 특이한 점은 '여성 전용 칸'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역에 들어서면 아랍어로 ‘여성(아랍어로 앗-싸이다트)’이라고 쓰여 있는 푯말을 찾을 수 있는데, 전동차의 두 칸 정도가 '여성 전용 칸'이다. 이처럼 지하철에 '여성 전용 칸'을 따로 둔 이유는 지하철이 붐비는 시간대에 여성과 남성이 접촉할 가능성이나 성범죄 발생을 애초에 배제하기 위한 것. 이는 이집트의 '이슬람 문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지하철 여성전용칸 표기 모습
지하철 매표소 앞
이집트는 전체 인구의 90%이상이 무슬림이다. 이슬람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유별해야 하며, 특히 여성의 경우 히잡(시리아·터키 등 아랍권의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와 상반신을 가리기 위해 쓰는 쓰개)을 써야하는 등 극도로 노출을 줄여야 한다. '여성 전용 칸' 역시 이런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이 일반 칸에 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남성만이 여성 전용 칸에 못 탈뿐, 여성은 여성 전용 칸과 일반 칸, 어디에도 탈 수 있다. 여성 전용 칸에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남자는 '잡상인'들 뿐이다. 주의할 것은 동양계 외국인 여성들의 경우 일반 칸 탑승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집트 남자들이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이집트 남성들은 동양계 여성들에게 "씨니(아랍어로 중국인이라는 뜻)", "니하오(중국어 인사말)"라며 말을 걸어온다. '동양인= 중국인'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이는 보통 조롱하는 의미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가급적 대꾸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이집트 지하철 안의 풍경은 말 그대로 시장 통 같다. 이집트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좋아하며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전화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이집트의 지하철을 이용하는 일부 외국인들은 이 같은 풍경을 보고 '이집트인들은 공공장소에서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다' 혹은 '아직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역시 하나의 이집트 문화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은 이집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이집트인들을 '오감(五感)'으로 느낄 수 있는 '문화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글= 최소연 정리=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최소연 씨는 한국외대 아랍어통번역학과에 재학 중으로, 현재 코트라 카이로 KBC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여러 종교학과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세계적인 중동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당찬 여성'이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온라인뉴스부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