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샤넬 ] (상) 샤넬의 탄생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샤넬이 돌아왔다. 백화점엔 '샤넬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트위드 재킷이 매장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걸려 있고, 여성들의 머리 위엔 커다란 코르사주 느낌의 헤어밴드가, 어깨에는 퀼팅 처리된 체인백이 걸려있다. 물론 그 모두가 고가의 '진짜 샤넬'은 아니더라도, 이들의 어딘가엔 샤넬이 있다. 샤넬이 돌아왔다. 아니, 샤넬은 영원불멸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블랙 앤 화이트 트위드 자켓과 기다린 진주 목걸이, 무릎을 덮는 미디스커트와 퀼딩 처리된 체인백까지. 여자들이 열광하는 '샤넬 스타일'은 '가브리엘 샤넬' 그 자체다.
1883년 8월 19일, 프랑스의 시골마을 소뮈르의 한 병원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가난한 장돌뱅이인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1895년 어머니는 지병과 과로로 사망하고, 어린 여자아이는 언니, 여동생과 함께 한 수도원이 운영하는 고아원에 맡겨진다. 10년 후, 뮤직홀에서 여가수로 생활하면서 '코코'라는 애칭을 얻었다. 5년 뒤인 1098년 연인 아서 카펠을 만나고 모자 디자인을 시작한다.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만 의상실을 오픈, 업계에게 그리고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끈다. 1934년, 5개의 빌딩과 4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가로 성장한다. 1971년 여든 아홉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새로운 의상,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쇼를 위해 뜨거운 일생을 보냈다. 여기까지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대충 간추린' 코코샤넬의 이야기. 샤넬의 일생이야 어쨋건 상관없는 사람들도 있다. 샤넬 체인 백만 옆구리에 찰 수 있다면 그의 일생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수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샤넬에 열광하고 그의 일생에 경의를 표한다. 얼마전 그의 일생을 소재로 영화 '코코샤넬'이 제작돼 화제를 모았던 것만 해도 그렇다. 그는 단순히 '내가 갖고 싶은 백을 만든 창시자'의 의미를 뛰어 넘는다. 시대를 앞서가는 스타일 그 자체이며, 화려한 명성을 구가하면서도 다분히 인간적이었던 인생의 롤모델이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피팅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은 열정을 간직한 그녀는 여성들의 롤 모델이자 로망이다.
◆ 코코샤넬의 탄생 = 앞에서 간략히 설명했 듯, 어린 샤넬의 인생은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70세가 넘어서도 숍에 나가 피팅 작업을 했으며 할머니가 되어서도 우아했다. 우리가 오늘날 '열광하는' 샤넬은 그의 열정과 성공에 대한 의지, 용기와 재능을 먹고 태어났다. 수도원의 기숙학교에서 나이 어린 고모 아드리엔과 함께 지내던 그는 1902년, 노트르담의 종교학교를 나와 물랭 시내의 '생트 마리'라는 의상실 점원으로 취직한다. 샤넬과 옷이 만나는 운명적인 해다. 물랭은 프랑스의 기병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 곳의 '로통드'라는 뮤직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샤넬은 '코코' 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 샤넬의 남자 = 샤넬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세 명의 남자가 있다. 하나는 그의 무책임한 아버지 '알베르 샤넬'이며, 하나는 '에티엔 발장', 마지막으로는 '아서 카펠'이 있다. 발장은 물랭에 주둔해 있던 기병 부대의 장교로 귀족 출신은 아니었지만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남자였다. 샤넬은 뮤직홀의 손님이었던 발장과 금세 친해진다. 그러나 발장은 여느 팬과는 달랐다. 그는 샤넬의 재능과 열정, 매력을 높이 평가하고 상류사회에 샤넬을 소개한다. 발장을 통해 샤넬은 자신의 목표에 대한 또렷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샤넬과 그의 연인 아서카펠. (사진= 영화 '코코샤넬' 스틸 컷)
'아서 카펠'은 샤넬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있는 남자, '연인'이다. 그는 영국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업가이자 유명한 폴로선수였다. 그를 만나 샤넬은 독특한 모자를 만들기 시작했고 패션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간다. 카펠은 샤넬에게 파리로 갈 것을 권한다. 1910년 파리 캉봉 거리 21번지에 '샤넬 모드'라는 모자 상점을 오픈한다. 곧 의상도 함께 만들게 된 그녀는 재능과 열정을 인정받으며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전쟁으로 '실용'을 담금질하다 = 한창 성장을 이어가던 그녀의 상점은 제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발발 당시에도 문을 닫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의상은 전쟁에 걸맞는 '실용'으로 무장하게 된다. 전쟁중이더라도 '멋'을 중요시했던 파리지앵들은 샤넬의 의상에 열광하고 도빌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전쟁중에 프랑스 최남단 비아리츠에도 의상실을 열었다. 샤넬은 이렇게 어엿한 사업가로 성공한다.그 즈음 시작된 여권신장의 움직임과 맞물려 샤넬은 여성들을 코르셋과 치렁치렁한 레이스, 바닥에 끌리는 치맛자락으로부터 해방시키면서 '패션계'에 화려하게 이름을 올린다. 사치스러운 귀족주의가 자취를 감추면서 샤넬은 남성들의 운동복으로 활용되던 옷감 '저지'를 가지고 여성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명 패션잡지인 '하퍼스 바자'에 샤넬의 옷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보그'지를 통해 소개된다. 세계적인 명성의 '샤넬'의 데뷔 무대가 열린 셈이다. ◇ 다음 주말 명품스토리 #1. 샤넬의 두 번째 이야기, '(중)샤넬의 성공, 전설이 되다' 가 이어집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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