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앵무새와 '삽질의 추억'

"그래서 시신은 어디에다 처리했나?""야산에 묻었습니다.""어디에?""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여기..저기에.."사이코패스와 형사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대화다. 3년 전 어느 가을 밤. 귀뚜라미가 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날이었다. 초보 애조인이던 기자는 아끼던 새를 잃었다. 낙조의 슬픔을 달랠 시간은 그리 많이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사체를 묻을 곳을 찾아야 했다. 밤 12시가 되자 작은 모종삽을 들고 집을 나섰다. 남의 눈을 피해야 하니까. 낮에 봐 뒀던 곳에 도착해서 열심히 팠다. 급하게 이별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밤 12시에 한적한 장소에 있는 것은 기자도 무서웠기 때문에 삽질은 점점 속도를 더해갔다. 꽃과 좋아하던 공을 함께 묻어줬다.

죽은 잉꼬의 모습

사랑했던 새가 죽는 일을 애조인은 '낙조(落鳥)'라고 한다. 낙조의 충격도 충격이지만 낙조 후에는 새의 사체를 처리해야 하는 일이 주인을 두 번 울게 한다. 반려동물의 사체는 법률상 생활폐기물로 분류돼 '일반 쓰레기'로 취급된다. 규격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놓아야 한다. 냉혹해 보일지 모르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규정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가족이나 다름없던 앵무새를 하루아침에 쓰레기봉투에 넣는 참담함을 이겨낼 수 있는 애조인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애조인들은 차라리 '암매장'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분도 좀 나아지려는지 최근 서울시는 이달부터 개나 고양이 등 동물의 사체를 위생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동물사체 수거 기동반’을 24시간 운영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반려동물의 경우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대신 동물병원이나 동물장묘업체에 문의토록 권장할 방침이다.

[신흥박제의 파랑새 박제]

죽은 앵무새를 박제하려는 애조인도 늘고 있다. 잔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앵무새를 차마 버릴 수 없는 심정에 애조인들은 박제 전문가를 찾는다. 청주에서 '신흥박제'를 운영해 온 서학영 대표. 청주동물원 등의 동물 박제를 두루 맡아온 그는 20년 경력의 박제 전문가다.3년전 에 홈페이지(www.박제표본.kr)를 열었는데 간간이 앵무새 박제 문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서대표는 "정들었던 앵무새가 죽어서 안타까운 마음에 박제를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조류의 경우 약물 처리를 포함해서 하루 정도면 박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제 비용은 잉꼬 등과 같이 소형 앵무류는 약 8만원~10만원, 대형 앵무류는 약 10만원~20만원까지 다양하다. 반려동물 장례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들 회사는 반려동물의 사체 수거 및 처리는 물론 사이버 분향소까지 각종 장례절차를 맡아준다. 종교에 따른 장례 절차나 반려동물 화장 증명서를 발급해 주기도 한다. 비용은 15만원~50만원까지 다양하다. 일부 업체들은 분향소를 운영하기도 한다. 가격은 연간 10만원~40만원 정도 든다. 그러나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화장 방법이다. 대부분 소형 동물의 경우 다른 고객의 의뢰한 동물 사체와 함께 화장하기 때문에 사실상 장례식의 의미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 단점이다. 아울러 단독 장례를 하게 될 경우 가격은 더욱 비싸진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반려동물. 데려오기도 힘들지만 보내기는 더더욱 힘들다. 정선영 기자 sigum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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