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5시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운구차량은 당초 예상시간보다 7~8분 가량 빨리 현충원에 당도했다.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홍업, 홍걸씨 등 유족들이 차에서 내리고, 장의위원과 참관객들도 뒤를 따랐다.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사람' 박지원 전 비서실장(민주당 의원)도 맨 뒤쪽에 자리했다.4분 정도가 지나자 영구차 앞으로 의장대가 정렬했다. 이내 의장대는 김 전 대통령의 유해의 운구를 시작, 태극기로 곱게 쌓인 김 전대통령을 모신 관은 그렇게 서서히 재단으로 이동했다.운구가 시작되자, 이 여사는 못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부축으로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떼는 순간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10분쯤 지났을까, 국가유공자 제1묘역 하단부, 이 여사의 눈물을 뒤로한 채 운구행렬은 미리 준비된 묘역에 도착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소와는 100여m,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와는 350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이 재단에 놓여졌고, 유족과 장의위원들은 자리에 앉아 개식을 준비했다. 고인에 대한 경례로 개식이 시작해 함세웅 신부의 주관으로 천주교 의식이 진행됐다. 이어 불교, 기독교, 원불교순으로 종교의식이 끝났다. 이 순간에도 이 여사의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 옆자리는 파킨슨병으로 몸이 불편한 큰아들 김홍일 전 의원이 자리했다. 김 의원 역시 힘에 부치는 지 연신 어깨를 늘어뜨렸다.유족과 친지, 평소 김 전 대통령의 옆을 지켜왔던 측근들의 헌화와 분향이 이어진 데 이어 하관식이 진행됐다. 하관식에는 유가족 18명과, 전직비서 10여명이 참석했다.하관식을 마친 후 흙을 삽으로 뿌리는 허토 의식이 거행됐다. 허토에는 고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에서 가져온 '흙 한줌'이 뿌려졌다. 곧바로 묘역에 '지석'을 넣은 후 흙을 덮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의 이름·생일·죽은날 세덕(世德)·사적(事蹟)·자손 등을 각자(刻字)해서 무덤 앞에 묻는 판석(板石)인 이 지석에는 대통령 성함과 호, 성장과정을 비롯해 일본납치사건과 대통령 취임, 정상회담 등 그동안의 정치역정 등이 쓰여졌다. 또 퇴임 뒤 활동과 저서, 이희호 여사와의 결혼, 가족들의 이름 등 가족사도 모두 기록됐다.의장대의 조총의식을 마지막으로 김 전 대통령의 안장식은 마무리됐다. 식이 마쳐진 뒤에도 이 여사는 고개를 들어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지 못했다.남편의 장례를 모두 마친 이 여사는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강조했다.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조해수 기자 chs9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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