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예산 삭감 엄포에 각 부처 신생정책 흔들흔들

농식품부 귀표, 보건복지부 미혼모 예산삭감

“소귀에 표식하나 다는데 마리당 1만원이나 필요합니까? 배정할 예산이 없습니다.”“송아지에 귀표를 달려면 인원이 최소 2명이 있어야 하고, 산골 오지나 섬의 한우 사육농가에서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나도 일일이 방문해야 하는데, 최소한 그 정도 예산이 줘야합니다.”지난 달 말 기획재정부 예산실에선 농림수산 예산 담당과장과 농협관계자사이에 짧게나마 설전이 오고갔다. 쇠고기 이력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귀표작업에 필요한 예산이 재정부에선 과당 책정됐다며 내년 본예산편성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농협관계자는 “농식품부에서도 1만원의 비용은 적정하다고 봐서 예산을 올렸는데, 재정부에선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단순히 내용만을 가지고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재정부가 재정건전성 차원에서 각 부처마다 일괄적으로 올해 대비 5~10% 내외로 내년 예산을 삭감하면서 각 부처별 신생사업의 상당수가 타격을 입을 예정이다. 특히 재정부가 올해 재정사업 평가결과 낙제점을 받는 사업들은 예산을 10% 이상 삭감하거나 사업을 폐지하기로 정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12개) 다음으로 가장 많은 낙제점(미흡판정)을 받은 농식품부(10개), 보건복지부(7) 등의 내년 사업에 상당한 차질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선 준비기간 5년 만에 올해 의욕적으로 시작된 쇠고기 이력제사업에 대한 예산 삭감이 검토되고 있다. 쇠고기 이력제는 개별 사육 농가가 키운 한우가 도축 및 유통과정에서 바뀔 가능성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태어난 송아지에 출생신고를 확인해주는 귀표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귀표는 사실상 주민등록증 기능을 하며 도축되기 전까지 의무적으로 부착하며 이력을 관리하게 된다. 문제는 송아지의 귀에 인식표를 다는 작업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날뛰는 송아지를 진정시키고 고정시켜주는 인력과 귀표를 장착하는 인력 등 최소 2명 이상이 필요한데다, 수백 마리를 동시에 키우는 기업화된 목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적이나 차량 이동이 불가능한 산골에 한우 1, 2마리만 키우는 영세사육농가도 적지 않아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축산업 협동조합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1, 2마리 송아지에 귀표를 달기 위해 섬을 방문해 하루 종일 걸린 적이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따로 연구용역결과엔 마리당 최소 1만 1000원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그나마 줄여서 올린 예산마저도 반영해줄 수 없다고 해서 난처한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재정부의 예산 10% 삭감 원칙에 보건복지부에선 ‘미혼모’관련예산이 유탄을 맞았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24세 이하 여자청소년이 임신해 아이를 낳았을 때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비용을 정부가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미혼모 예산 240억 원을 재정부에 요청해 놨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성문화가 개방되면서 여대생은 물론 중ㆍ고등학교 여학생들의 미혼 출산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이의 아버지가 양육책임을 외면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유전지 검사가 중요한 증거로 작용하고 있다. 통상 유전자 검사 비용은 40만 원 정도이며 청소년 미혼모는 한해 평균 5000-6000명 정도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정부에선 저 출산에 따른 출산장려정책에 이미 상당수 예산 증액이 된 만큼, 미혼모 예산까지 늘릴 수 없다며 거절의 입장을 분명히 한 상태라는 게 보건복지부측의 설명이다. 일각에선 각 부처가 정해진 지출한도 내에서 예산을 요구하고, 재정부는 이를 검토ㆍ보완해 정부안을 작성하게 뒤는 방식의 예산 총액배분자율편성 제도가 재정사업에 대한 불만도 토로하고 있다.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일종의 톱다운 방식의 예산 편성 방식 때문에 각 부처별 고유의 특성화된 사업이 일괄적으로 통합 혹은 폐지되는 사례가 많다”며 “예산편성 방식에 좀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규성 기자 bobo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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