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시리즈로 거부가 된 영국작가 조앤 K 롤링은 시리즈 1권의 완성원고를 들고 2년 동안 12개의 출판사를 전전해야만 했습니다. 어느 출판사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그녀 혼자서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두드린 끝에 마침내 한 곳에서 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아무도 그 상상력을 인정해주지 않았을 때, 한 해 전에 다섯 번째로 찾아갔던 출판사의 편집부 직원이 우연히 조앤 롤링이 오래 전 맡겨두고 간 원고를 집어 들고 읽어보게 됩니다. 단숨에 읽어내려 간 스토리였지만 그 때도 확신을 가진 게 아니라 ‘이거 꽤 흥미진진한데’ 정도의 가능성만 본 정도였죠. 당시 <블룸스베리> 출판사가 그녀에게 제의한 조건은 초판 500부였습니다. 안 팔려도 우리 돈으로 몇 백만원 정도 날리면 그만이고 장차 팔리는 거 봐서 더 인쇄하겠다는 식이었지만 가난한 그녀로선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그토록 고대했던 출판사의 전화 한 통이 이름 없는 작가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드는 계기가 될 줄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그런데 만약 그 출판사 직원이 해리포터 원고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지만 그녀가 2년간 끈질기게 출판사를 찾아다닌 행적으로 미루어 봐서, 비록 출판 시기는 늦어지겠지만 언젠가는 어디서 반드시 빛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무명작가의 원고란 닫힌 생각 때문에 성의 있게 원고를 검토하지 않았던 다른 출판사의 담당자들은 그 후 틀림없이 많이 후회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11개 출판사 사장과 직원들이 발견하지 못한 보석을 오직 한 사람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고정관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때론 열린 생각이 개인과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국가의 성장 동력에 관여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하는 사례를 우리나라는 제법 많이 갖고 있습니다.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 사이에 오고 간 짧은 일화 하나를 들어 보면···. 1975년 여름, 박정희 대통령은 오일쇼크 파고에 크게 흔들리는 대한민국이란 거함의 선창 밑바닥에 중동이 축적한 달러를 채워서 중심을 잡아보면 어떨까 하는 통 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서 “지금 달러를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도 일을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정 회장이 중동에 좀 다녀오시지요. 정 회장도 안 된다고 하면 할 수 없지만.”의아한 표정의 정 회장에게 “중동국가들이 석유로 벌어들인 달러로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려고 하는데, 너무 더운 곳이라서 일하러 오겠다는 나라가 없자 우리 정부에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정부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낮엔 너무 더워서 일을 할 수가 없고, 건설공사는 물이 많이 필요한데 사막지대라 물이 부족해서 공사를 할 수 없다는 겁니다.”정 회장은 그날로 중동행 비행기를 타고 가서 5일 동안 중동 땅을 살펴본 후 다시 박 대통령을 만나 경과보고를 했습니다.“중동은 제가 본 바론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 제일 좋은 곳입니다.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 모래와 자갈이 온 나라에 지천으로 널려있으니 건설자재 조달에는 그만입니다.”“아니, 공무원들은 다들 물 걱정을 많이 하던데요?”“그거야 어디서 실어서 오면 되겠지요.”“그럼, 50도나 오르내린다는 무더위는요?”“그건 낮에는 천막 치고 자면 되고, 대신 밤에 일하면 될 겁니다.”똑같은 땅을 보고 온 관료와 정 회장의 생각이 이렇듯 달랐습니다. 돌다리는 이미 두드려 봤으니, 쇠뿔은 단김에 빼도록 즉시 현대건설의 중동진출에 정부의 최대한 지원이 지시됐습니다. 과연 아산이 말한 대로 한국인들은 낮에 자고, 밤엔 횃불을 들고 밤새워 일했던 것입니다. 이제 장마도 가고 무더운 시즌에 들어서는데 정치마저 신선한 바람은커녕 고질병이 도진 듯이 사생결단으로 상호비방의 포문을 열고 있습니다. 버릴 때도 되었건만 늘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닫힌 생각과 정치관성이 점거와 농성과 날치기라는 공방으로 서로를 흠집 내는 중입니다. 고정관념만 버리면 평소 안 보이던 길이 보이고, 무더위쯤이야 이길 수 있는 에너지를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모두에게 그런 수요일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사평론가 김대우 pdikd@hanmail.ne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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