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출구' 터줘야 경제가 산다

넘치는 유동성 투자로 돌려라 ① 긴급제안 투기자본 변질땐 악순환 고리 못끊어 대기업 현금성 자산 유인대책도 시급 PEF 도입·투자기업 금융지원 등 필요
'풍요속 빈곤'이 지속되고 있다. 돈이 들어가는 '입구'는 있지만 '출구'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기대와는 다른 출구로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마음먹고 푼 돈이 기업투자자금 등 생산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부동산과 주식 등 고수익 투자처 근처에서만 '순번표'를 기다리고 있다. 최근 '국지적으로라도 부동산 과열현상이 나타나면 정책수단을 집행하겠다'는 정부의 입장도 이같은 우려를 감안한 시장에 대한 압박이다. 돈의 유통이 원활히 이뤄지는지를 볼 수 있는 통화유통속도는 2007년까지 0.8을 유지하다 작년말 0.7까지 내려갔다. 현금과 결제성 예금으로 구성된 협의통화(M1) 증가율이 14%대까지 불어났지만, 6개월 이상 2년미만 금융상품을 포함한 광의통화(M2) 증가율은 1년전 15.8%에서 10%후반으로 떨어졌다. 이는 유동성 공급이 풍부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로 경기활성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돈의 흐름이 원활치 못하다보니 비교적 사정이 넉넉한 기업들의 지갑도 열리지 않고 있다. 3월말기준 10대그룹의 현금성자산은 지난 연말보다 3.82%(1조7180억원) 증가했고, 12월결산법인 전체로 확대하면 8.27%(5조9664억원) 늘었다. 여전히 경제 불확실성이 크고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기업의 인식을 대변하는 수치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동성 공급을 통해 급한불을 끄자는 정부의 그간 스탠스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유동성 과잉은 아니다'는 공식 입장에도 불구, 정부 주도의 유동성 공급을 지금처럼 이어가기는 무리가 있다는 인식이 공감을 얻는 상황이다. 대신 민간자금과 자본시장을 활용해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경기회복을 견인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8일 유로머니 세미나에서 "지금은 민간과 시장의 힘을 활용해 위기 극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적극적 역할 수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부실 기업 구조조정과 우량기업의 발전 자금 등 경기회복 기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적극 유입돼야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각종 펀드 활성화 등을 통해 자본시장의 자금공급 기능을 확대하고, 국책금융기관을 통한 투자비용 지원도 늘리기로 했다. 우선 하반기에 기존 PEF(사모투자펀드)의 자산운용제한을 완화한 기업재무안정 PEF,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등을 도입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존 PEF가 부실기업과 경영권인수 등에 국한됐지만, 기업재무안정PEF는 우량기업이지만 재무상태가 일시적으로 나쁜 기업 등에도 폭넓게 참여할 수 있다"며 "기업인수목적회사도 일종의 합법적 우회상장의 길을 터줘 시장성도 확보하고 기업자금 지원도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책기관을 통한 지원도 확대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신성장동력산업의 연구개발(R&D) 지원을 위해 3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고, 중소기업의 체질개선을 돕는 턴어라운드펀드·녹색기업 등에 투자하는 그린퓨쳐펀드 등 총 10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 시중자금을 일정부분 흡수하는 동시에 기업투자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자산관리공사가 조성하는 구조조정기금도 금융기관 건전성 악화를 막아 기업에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밖에 비업무용 토지 판정 유예기간 연장, 기업구조조정자금에 대기업 연구개발비 세액 공제 확대 등도 재계의 건의를 받아 정부내에서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또 선제적 투자에 나서는 기업들에게는 적극적인 금융지원도 약속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어려울때 일수록 주저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투자해야할 시기"라며 "이러한 기업에는 적극적인 금융지원이 이뤄지도록 배려하겠다"고 말했다. 박수익 기자 sipark@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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