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촉촉히 땅을 적시던 토요일 찾은 노량진수산시장에서는 꽃게철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점포 곳곳에 큼지막하게 꽃게라고 써붙인 글씨가 눈에 띄었고 시장 초입에서는 게를 한아름 쌓아놓고 흥정이 한창이었다. 점포마다 철을 맞아 통통한 꽃게는 물론 긴다리를 쑥 뻗은 대게, 킹크랩 등이 맑은 물속에서 신선함을 내보이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노량진시장을 찾은 이유는 주중에 먹었던 꽃게맛을 잊지 못해서였다. 꽃게철이라더니 제철맞은 꽃게의 통통하게 오른 뽀얀 살과 그득했던 노오란 알에 완전히 포로가 된 터였다.
고무대야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꽃게와 수조 안을 헤집고 다니는 대게 등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생각나는 한 마디 "니들이 게맛을 알아?"꽃게의 맛이 가장 좋은 때는 3~5월 중순쯤으로 이때는 산란기 직전이라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알과 내장도 가득 차 있다. 이 시기에는 산란을 앞둔 암게가 더 맛있다. 7~8월에는 꽃게잡이가 금지되기 때문에 봄 꽃게철을 놓치면 10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가을에는 암게보다는 수게가 더 맛이 좋다. 게는 타우린이 풍부해 고혈압, 동맥경화 등에 좋으며 게껍질에 함유된 키토산은 콜레스테롤을 흡착해 몸밖으로 내보내는 기능이 있어 암세포 증식을 억제한다.
대게는 보통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가 제철이다. 크기가 커서 대(大) 게가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대게는 대나무를 닮아 그렇게 부른다. 대게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은 적고 칼로리가 낮은 반면 단백질과 무기질이 풍부하다. 대게가 은은하고 부드럽다면 킹크랩은 더 향이 진하고 쫄깃하다. 북태평양의 중요한 수산자원으로 알래스카, 베링해, 북극해 등에서 많이 잡힌다. 주로 통조림으로 가공되는 킹크랩은 한때 한국에서 통조림 공장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잡히지 않는다. 어렸을 적 내가 아는 게맛은 꽃게탕 맛이었다. 어머니가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끓어주시던 꽃게탕에 길들여서 당시 게맛을 아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난 필시 꽃게탕 맛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후에 맛을 들이게 된 게장. 밥도둑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도록 맛있지만 간장게장도 양념게장도 간장과 고추장 양념의 맛이 강하게 나 게맛을 안다고 하기엔 어딘가 좀 부족하다. 그 고유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꽃게나 대게찜. 아무런 가미없이 게의 맛 그대로를 맛볼 수 있다. 단백하면서도 고소한 향이 입안을 가득 메우면 "아 이 맛이 게맛이겠다" 싶어진다.이밖에 외국의 각종 게 요리도 있다. 특히 상하이(上海)의 게는 보통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가 제철이지만 상하이에 가면 철에 상관없이 늘상 찾게 된다. 상하이의 명물 '다자시에(大閘蟹)'는 민물 게의 일종으로 상하이에서 쑤저우(蘇州)로 가는 길에 위치한 호주 양청후(陽澄湖)에서 잡히는 것을 최고로 친다. 짝퉁이 판치는 중국에서는 이 최고급 다자시에에 일련번호와 생산자 등의 정보를 기록한 명찰을 붙여 가짜와 구별되도록 한다.
왕바오허의 다자시에 찜.
상하이에서 다자시에 요리로 가장 유명한 집은 인민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왕바오허(王寶和)다.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44년 생겨서 지금까지 상하이의 게맛을 지켜왔다. 메뉴판을 보면 게 전문점답게 게요리 일색이다. 게살만 발라내 볶아낸 요리부터 살과 알을 두부와 같이 쪄낸 것 등 다양하다. 그래도 가장 대표적인 요리는 찜으로 가격도 가장 세다. 찜을 주문하면 점원이 수컷을 원하는지 암컷을 원하는지 물어보는데 9월에는 암컷을, 10월에는 수컷을 택하라는 의미의 '九雌十雄'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음력 9월에는 암컷의 배에 알이 가득해지고, 10월에는 수컷의 살이 올라 맛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왕바오허의 다자시에 볶음 칭차오셰펀.
또 인상적이었던 게요리는 태국식 게요리인 '푸팟퐁가리'다. 태국식 커리에 게를 넣어 볶은 요리로 큼직한 게와 어우러진 커리 소스가 일품이다.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대표적 동남아 요리 중 하나로 무엇보다 커리소스에 밥을 비벼 먹는 맛을 빼놓을 수 없다. 이와 함께 후추를 넣고 게를 볶은 페퍼크랩이나 칠리소스에 버무린 칠리크랩도 추천할 만 하다.
칠리소스와 함께 볶은 칠리크랩.
게철이 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게맛을 알아보면 어떨까. 송화정 기자 yeekin77@asiae.co.k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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