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뉴스를 보다보면 ‘접대’란 말이 이다지도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리스트’다 하면 으레 ‘접대’가 따라 옵니다. 정치권이든 언론계이든 연루된 어지간한 사람이면 모두 접대를 받았습니다. 시쳇말로 ‘접대’ 한번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어디에 명함도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접대’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손님을 맞아서 시중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집이나 사무실 등에 찾아온 이를 대접하는 것을 나타내나 요즈음엔 회사의 업무나 다른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에게 향응을 베푸는 것으로 통칭해 사용됩니다. 영업 일선에서 책임자로 있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저녁 자리에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고 하소연입니다. 외국 상사에 주로 근무해 접대문화에 익숙하지 못해서인지 어지간한 고역이 아니랍니다. 물론 누구들처럼 2차, 3차 가는 것은 아니지만 신생 영업조직을 이끌기엔 애로가 많은 모양입니다. 매출도 매출이지만 접대비 결제 역시 만만치가 않답니다. 국내 기업들은 접대비가 한 해 7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 기업들의 접대는 저녁식사와 함께 술로 시작해 차수를 거듭하며 결국은 성접대까지 이어집니다. “엔지니어로 일하다 간부가 되면서 영업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평소 준비해 오던 터라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공기업도 모두 나의 고객들이다. 매일 고객을 만나고 자연히 그들과 같이 하는 술자리도 빈번해졌고 소위 ‘여성도우미’가 있는 노래방, 단란주점, 룸살롱 등도 가끔 가게 된다. 조금 큰 프로젝트의 경우 영업에 영향력이 있는 상대 기업의 직원은 가히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그들과 짝을 이루어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지금까지 여성 접대부와의 2차를 제안했을 때 완전히 거절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한 중견기업 영업 간부의 독백처럼 고객이 되는 상대기업의 직원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되면 업무속도도 평소보다 빨라지고 여러 부분에서의 불평도 놀라울 정도로 모두 사라진다고 합니다. 언제부터 우리 주변이 이렇게 변했는지, 꽤나 오래된 것 같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접대 수단으로 각광받는 것은 골프가 있습니다. 사실 필드에 한 번 나가면 비용 또한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주말이면 부킹전쟁입니다. 골프를 즐기는 모두가 접대와 연관됐다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상당한 골퍼들이 자기 호주머니에 의존하지 않고 회사 비용으로 지불합니다. 이에서 그치면 다행인데 골프를 마치고 또 술집으로 달려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접대의 연장이지요.. 이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대전지역 기관들의 국정감사를 마치고 단란주점 등에서 피감기관으로부터 수백만원대의 향응을 받고 성접대까지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민의를 살핀다는 국민 대표들의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행동입니다. ‘장자연 리스트’의 술시중과 부적절한 접대에 연루된 저명인사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그렇다 하더라도 불과 며칠 전에는 현직 청와대 행정관 2명이 관련업체 관계자로부터 향응을 받고 성접대까지 받으려다 성매매 단속을 위해 잠복 중인 경찰에 적발되었습니다. 또 통탄할 일은 일부 교복 대리점 업주들이 중학교 학생들에게까지 술을 접대하며 교복 판촉에 나섰다니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어디까지 추락할지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외국에도 접대문화는 있지만 우리 같은 질퍽함은 없답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자신이 부담을 느끼는 것도 꺼려한다고 합니다. 보통 비즈니스를 위한 접대는 서로 격식을 갖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비싼 것, 쾌락적인 것보다는 특이하고 의미 있는 곳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역시 풍성한 음식과 좋은 술을 준비하되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격의 없는 대화를 가지는 것을 최상의 접대로 간주한답니다. 2004년 기업의 불건전한 접대비 지출을 막고 고액의 향락과 소비성 접대를 바꾸자고 도입된 접대비실명제가 올해 폐지됐습니다. 50만원이 넘는 접대비 영수증에 접대자, 접대 상대방, 접대 목적 등을 기재하는 것으로 그간 영수증 쪼개기 등 편법 처리되는 나쁜 관행이 나타났다고는 하나 어느 정도 과소비를 줄이고 방탕한 접대문화를 일부 개선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아무리 기업프렌들리라지만 필요한 거름 장치를 없앤 느낌입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접대’라는 포장 아래 뇌물이나 과도한 향응을 제공하며 사업상 어려운 청탁이나 요구를 해결하여 왔습니다. 결국 왜곡된 접대문화가 오늘과 같은 화를 낳았습니다. <당신도 접대의 달인이 될 수 있다>에서는 접대는 정성을 다해 상대를 흡족하게 해주려는 배려의 마음이 우선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선물과 뇌물, 건전한 접대와 과도한 접대의 경계가 애매하지만 스스로 떳떳한 기준을 정하고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보다 자연스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한 대기업의 고위층이 자녀를 혼인시켰습니다. 많은 하객이 왔고 모두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지만 일부 축의금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을 넘는 것도 상당수였답니다. 굳이 얼마라고 말하진 않지만 스스로 축의금의 기준을 잡고 그 이상은 “죄송하지만” 하며 돌려주었답니다. 우리는 ‘사바사바’란 말을 흔히 씁니다. 은밀한 뒷거래를 위해 수작을 부리는 것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지만 알고 보면 ‘사바’는 일본어 고등어란 말로 일본인들이 은사를 찾아 뵐 때 감사의 표시로 고등어 두 마리를 사간다는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소박하고 진심이 담긴 접대를 나타내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왜곡돼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전통적으로 스승에게 떡을 해드리고 마을의 어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소박한 접대문화가 있습니다. 아무리 도덕성이 추락하고 사회의 가치관이 훼손되었다고 하나 더 이상의 추문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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