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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한국판 알렉스…귀공자의 '살인+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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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공자'로 스크린 데뷔 김선호
폭력 자유 만끽하는 얼굴로 부조리 타파
밑바닥 인생 반감·불신 잊고 결핍 감춰
시리즈 제작 시 독보적 배역 부상 가능성↑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1971)'에서 알렉스(말콤 맥도웰)는 인간 말종이다. 살인, 강간, 절도를 일삼으며 미소를 보인다. 폭력을 행사하며 흥겹게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도 부른다. 박자에 맞춰 은둔 작가 알렉산더(패트릭 마지)를 때리고, 그의 아내(에이드리언느 코리)를 강간한다. "난 빗속에서 노래하네 / 그저 빗속에서 노래하네 / 얼마나 신나는 기분인지 / 난 다시 행복하다네."


[라임라이트]한국판 알렉스…귀공자의 '살인+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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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선호는 기쁨으로 충만한 리듬이 고조될수록 사악함이 부상하는 얼굴을 수십 번 관찰했다. 박훈정 감독이 영화 '귀공자'에서 맡길 배역의 표본으로 제시해서다. 명랑한 태도와 상글상글한 미소로 일관하는 귀공자다. 직업은 살인을 전문으로 하는 해결사. 죽을 위기에 직면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만큼 담대하다. 당당한 풍채와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경고를 날리고는 순식간에 상황을 역전시킨다.


'시계태엽 오렌지' 같이 극단적 폭력과 해악을 제시하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아니다. 자유와 윤리에 대한 논리 구도를 깨뜨리려는 시도도 없다. 선과 악의 통념을 거스르는 성격만 빌려왔다. 무차별적 폭력의 자유를 만끽하는 얼굴로 상류사회의 부조리를 타파하는 내용이다.


선험적 성격의 윤리나 도덕이 아예 배제된 건 아니다. 뒤늦게 강한 동질감을 위시해 따뜻한 눈길을 보여준다. 자신이 지키기로 마음먹은 마르코(강태주)에게 아버지(?) 앞에서 충분히 울 시간을 부여하는 신이 그렇다. 김선호는 "귀공자의 인간적 면이 새어 나오는 유일한 장면"이라고 말했다.


"귀공자도 그런 순간을 꿈꿨을 듯했어요. 태생적으로 마르코와 비슷한 면이 많은 친구니까요. 그래서 공감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충분히 그리려고 애썼죠. 완성본에 담긴 연기보다 온기를 더 길고 깊게 표현했어요. 반전이 뚜렷하게 암시될 수 있어 많이 편집됐으나 진심만큼은 충분히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라임라이트]한국판 알렉스…귀공자의 '살인+미소'

'귀공자'는 태어날 때부터 한계를 떠안은 코피노가 운명을 거스른 과정을 복기하는 여정일 수 있다. 통상적으로 비슷한 배경의 배역은 분노나 비애를 이기지 못하고 반감과 불신을 표출한다. 귀공자는 정반대 노선을 걷는다. 밝은 미소, 말끔한 옷차림, 절제된 움직임 등으로 부단히 결핍을 감춘다. 때로는 체면치레하느라고 허세도 부린다. 인생에서 열등감 극복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귀공자도 과거에는 마르코처럼 뒷골목을 전전하는 밑바닥 인생이었을 것이다. 뚜렷한 꿈이 생기면서 사회에서 규정한 자유의 한계를 의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질서와 제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성취와 해방감을 동시에 누려온 셈이다. 단 전자가 열등감 극복에서 비롯돼 자신이 규정한 폼생폼사 규칙만큼은 철저히 준수한다.


박훈정 감독은 모순돼 보이는 행위를 코미디로 부각한다. 터널 안에서 '터미네이터2(1991)' 속 T-1000(로버트 패트릭)처럼 마르코를 쫓다가 가느다란 빗줄기에 추격을 멈추는 장면이 대표적 예다. 귀공자는 구두가 젖을 것 같아 망설이다가 천둥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휘파람을 불더니 손거울을 꺼내어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독특한 개성이 묻어나는 연기는 사실 김선호가 즉석에서 발휘한 위트와 유머다. 그는 "중반부에 촬영한 신이에요. 이때부터 박훈정 감독이 재치 있는 표현을 마음껏 보여 달라고 주문했죠"라고 회고했다.


[라임라이트]한국판 알렉스…귀공자의 '살인+미소'

"박훈정 감독이 이전까지 촬영한 신들을 편집해보니 귀공자가 애초 구상과 달라 보인다고 이야기했어요.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고 해요. 아무래도 배우가 배역을 가장 잘 이해할 테니 특별한 제한 없이 다양한 면면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셨죠. 그래서 귀공자가 처한 상황과 엇박자를 낼 만한 디테일을 하나씩 그려가기 시작했어요. 촬영 횟수는 두 배가량 늘었으나 배역을 한층 풍성하게 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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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배려 속에 김선호의 연기 폭은 한층 넓어졌다. 귀공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넣으며 획일화된 서사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장르가 누아르에서 블랙코미디로 바뀌는 전환점에서 부드러운 연결고리 역할도 해낸다. 물론 추격과 반전에 몰두한 단조로운 이야기의 단점까지 상쇄하진 못한다. 하지만 '마녀'처럼 시리즈로 제작된다면 충분히 독보적 배역으로 부상할 듯하다. '시계태엽 오렌지'처럼 주체적 반성 능력의 회복이 궁극적 목표로 설정된다면….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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