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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 스토리 버무린 '작가의 요리'는 어떤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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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익숙한 식재료부터 낯선 것까지 매력
쓰임의 이유까지 곁들이면 풍미가 업

[빵 굽는 타자기] 스토리 버무린 '작가의 요리'는 어떤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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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포네’, 돼지 앞발 속을 파낸 후 돼지 껍질과 뱃살, 지방을 갈아 넣고 만든 일종의 소시지로 이탈리아 모데나 지역에서 주로 먹는 새해 요리라고 한다. 비슷한 요리인 ‘코테키노’는 돼지 창자에 부속 부위를 넣어 만든 소시지로 역시 이탈리아 중부 지방의 새해 음식으로 통한다. 새해부터 뱃살 넣은 소시지라니, 꽤나 기름진 이 풍습엔 이유가 있다. 유럽에선 대개 겨울에 돼지를 잡아 소시지를 만들어 식량을 마련했는데 살이 많은 뒷다리는 귀족의 몫이었고 서민들에겐 돼지 족, 창자, 껍데기 등이 돌아갔다. 이 부위들은 장기간 보관이 어려워 빨리 소비해야 했고 그 시기가 바로 새해 직전 혹은 직후였다는 것이다.


낯선 이의 시선으론 어쩌다 새해부터 족발로 만든 소시지를 먹게 됐을까 싶다가도 그 배경에 서민에게 주어진 값싼 부위를 남김없이 활용하기 위한 식문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우리 음식의 연원도 이와 맞닿아 있는 것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국적으로만 여겨졌던, 여행의 단상 속에만 머물 것 같은 음식도 그 맥락을 보면 우리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최근 출간된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에 담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 사실을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와인 비스트로 ‘어라우즈arouz’를 운영하는 셰프이면서 푸드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작가는 이탈리아로 요리유학을 떠나 유럽 10개국, 60여 개 도시를 누비며 배운 음식에 더해 전세계 다양한 식재료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의 기록으로 이 책을 빼곡히 채웠다. 작가의 ‘요리’는 식재료 준비에서 시작된다. 호박, 오이, 옥수수, 토마토 등 우리에게 익숙한 채소부터 아티초크, 사프란 등 낯선 식재료까지 다룬다. 작가가 전하는 식재료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네 식탁에서 익숙하게 만난 애호박도 달리 보인다. 애호박과 닮았지만 조금은 다른 주키니 호박과의 차이도 알게 된다. 음식을 구성하는 재료에는 각기 다른 매력과 반드시 쓰이는 이유가 있다고 작가는 전한다.


다채로운 식재료로 요리된 음식은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더 맛있어진다. 우리가 흔히 먹는 한국식 카레가 인도에서부터 어떻게 오게 됐는지, 한국의 이탈리안 식당에서 파스타는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피시앤드칩스는 왜 영국 음식의 대명사가 됐는지 등 다양한 스토리들은 맛을 이루는 것이 음식 밖에도 있다고 넌지시 얘기한다. 터키의 케밥이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 된 사연을 알면 우리가 앞으로 먹을 케밥에 새로운 맛이 더해지는 것이다.


작가의 음식 여정은 우리나라에서 출발해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의 음식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음식, 남미 페루의 음식까지 이어진다. 그러면서 꾸준히 독자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음식의 본질은 무엇일까’라고. 세계 각지의 다양하고 화려한 음식을 경험했음에도 그는 남은 생 먹을 단 한 가지 음식으로 국밥을 꼽았다. 맛과 영양, 가격 등은 어쩌면 부차적이다. 버릴 것 없이 식재료를 온전히 활용한 국밥 한 그릇, 그 한 그릇에는 역사와 문화를 뛰어넘는 음식이 주는 기쁨과 충만감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음식의 본질, 음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작가는 이미 자신만의 답을 찾은 듯하다.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장준우 지음/북앤미디어 디엔터/1만6000원)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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