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대심도 구분지상권 설정방안 연구용역
지하 깊은 곳에 철도를 낼 때 구분지상권을 설정하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법률 검토에 나서기로 했다. 구분지상권이란 타인의 토지를 쓸 때 지상이나 지하에 일정한 시설물 등을 둘 수 있게 따로 정해두는 권리로 터널이나 지하철 공사에 주로 적용한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짓는 과정에서 구분지상권 설정 문제로 일부 지역 주민 사이에서 반발하는 등 문제가 불거진 데 따른 조치다. 앞서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추진했으나 이해관계 조율이 되지 않아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9일 관계부처 설명을 종합하면,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이달 중 대심도 지하 부분을 사용할 때 구분지상권 적용과 그에 따른 보상업무 등 현행 법률 전반을 개정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구분지상권 문제는 GTX 사업 초기부터 해당 지역 주민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된 사안이다.
현행 헌법과 개별 법령에서는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면서 지하에 철도시설물을 지을 때 보상을 의무화하고 있다. GTX는 통상 40m 이하를 일컫는 대심도 부분을 사용하는 터라 구분지상권을 설정하고 깊이에 따라 차등해 보상했다. 고층 시가지는 한계심도를 40m로 보고 이보다 깊은 곳을 쓸 경우 보상 적용률을 0.2% 이하로 하고 있다.
그간 지역 주민 사이에서는 대심도 공사의 경우 턱없이 적은 보상기준과 재산권 침해를 두고 불만을 제기해 왔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서울 성동구 한 아파트 입주민은 "지하에 GTX 시설 일부가 걸쳐있어서 등기부등본상 철도시설이 적힌다고 한다"며 "그에 따른 보상도 3000원 수준에 불과해 재산권이 침해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왕십리뉴타운에 들어선 텐즈힐 1·2단지는 대심도 저촉 범위가 수십, 수백㎡로 전체 단지에서 1%가 채 안 된다. GTX 노선이 단지 끝자락 극히 일부분에 걸치는 수준임에도 2800여가구의 등본에는 구분지상권이 기재된다는 얘기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분지상권 설정에 대한 법적·행정적 절차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개선할 것인지, 현행 철도 관계 법령이 시대적, 환경적 변화에 부합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한 건 없다는 입장이다. 구분지상권은 헌법은 물론 철도건설법, 토지보상법, 민법을 비롯해 국토부 고시로 있는 보상기준 등 다방면에 얽혀 있다. 전문기관 연구용역 등을 거쳐 해외 사례나 개정안의 정합성 여부 등을 따져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GTX 사업 초창기 보상기준 등을 둘러싸고 지역 반발 등이 이어지자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구분지상권을 적용하지 않는 방식을 검토했었다. 제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구분지상권을 정하지 않고 주민 토지사용승낙서를 받아 지하 부분을 활용하는 방안, 현행 체계를 따르되 주민동의를 거쳐 대표 명의로 구분지상권을 정하는 방법 등이다. 일정 심도까지는 구분지상권을 정해 보상하되 40m 이하 대심도는 적용을 제외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토지 소유권이 바뀌더라도 재동의 절차가 필요 없어 상대적으로 법적 안정성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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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대심도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물건 이전이 필요하거나 구체적 손실이 발생하면 보상하거나 청구할 수 있는 근거를 뒀다. 현 기준을 두고 불만이 많은 만큼 법령 정비는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김재선 동국대 교수는 앞서 토론회에서 "이해관계자의 재산권을 충분히 보호하되 구분지상권 설정의 단점을 극복할 입법론이 제안돼야 한다"며 "혹시 모를 피해보상의 근거도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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