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뜻 따랐지만 당내 입지 불투명
지도부는 와해, 측근들은 줄 사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로 이끌면서 당내 다수가 아닌 국민 다수를 따랐다는 명분을 챙겼다. 그러나 예상보다 적은 찬성표와 탄핵안 가결 직후 최측근들의 줄사퇴, 당내 대표 사퇴 요구에 직면해 정치적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대권 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 대표는 4·10 총선을 4개월 앞둔 지난해 12월 국민의힘에 처음 발을 들였다. 당시 당대표였던 김기현 전 대표가 사퇴하자 법무부 장관직을 사임하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의석수 300석 중 108석을 확보해 집권당 기준 역대 최저 성적을 기록하자 한 대표는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다시 당대표로 선출되며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한 대표는 이후 당대표 임기 동안 여러 차례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차별화를 꾀했다. 특히, 김건희 여사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윤 대통령에게 요구했고, 윤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자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위헌·위법하다'고 비판하며, 여당 의원들의 국회 계엄 해제 요구를 위한 표결 참여를 독려했다.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윤 대통령의 제명과 출당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이번 탄핵안 표결에서 보듯, 한 대표를 믿고 가결에 표를 던진 의원 수는 예상보다 적었다. 친한(한동훈)계 내부에서도 결정적인 순간 한 대표의 뜻을 따르지 않은 의원들이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앞선 원내대표 선거 때 친한계가 밀었던 김태호 의원이 34표를 받았는데, 탄핵안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국민의힘 의원은 최소 12명, 기권과 무효표를 더하면 23명 정도로 추정된다.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면 최소 11명이다. 이는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표결 때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서 나왔던 62명의 이탈표와 비교해볼 때도 상당히 적은 것으로 평가된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 이탈표 규모를 두고 "원내지도부 차원에서 파악했던 것보다 작은 규모"라고 말했다.
탄핵안 가결 직후 한 대표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장동혁·진종오 최고위원이 모두 사퇴한 점도 한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약화시킬 전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장 의원과 진 의원을 포함해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이 전원 사퇴하면서 사실상 해산 수순에 접어들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이 사퇴하면 지도부는 비대위 체제로 전환된다. 아직 한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친윤(윤석열)계를 중심으로 사퇴 압박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갈등해 온 친윤계와는 골이 더 깊어졌고 내부 측근들의 전선도 흐트러지면서 한 대표의 정치적 미래는 불투명성이 커졌다. 탄핵의 과실은 야권이 가져가고, 내부 디딤돌은 약해지는 흐름이다. 그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갈지 주목된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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