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코인시장 장악, 제재회피 억제
코인 채굴기업들 대거 美 유치 노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비트코인을 미국의 전략자산으로 비축하겠다고 공약한 데 이어 관련 법안까지 발의되면서 가상화폐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달러 패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옴에도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을 중심으로 비트코인의 전략자산화 정책이 빠르게 추진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인 2021년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했던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은 불과 4년 만에 180도 변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가상화폐 공약에서 비트코인은 이제 사기가 아니라 미국의 부채를 대폭 줄여줄 새로운 대체자산이다. 향후 5년간 매년 20만개씩, 총 100만개의 비트코인을 미국 정부가 사들여 가격이 더 상승했을 때 적정수준 매각하면 미국 정부부채를 줄일 수 있다는 전략이다.
비트코인의 전략자산화 법안을 상정한 신시아 루미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매년 가치가 2%씩 하락하는 달러 대신 55%씩 상승하는 비트코인을 준비금으로 갖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며 "비트코인의 전략적 비축을 통해 2045년까지 미 정부 부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단순히 재정부채를 줄여주는 정도가 미국 정부의 목표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 이면에는 달러패권에 이어 가상화폐 패권까지 쥐기 위한 노림수가 숨어있을 것으로 풀이된다. 가상화폐 시장의 근간인 비트코인을 많이 확보한 나라는 앞으로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과거 대량의 금 매입을 통해 세계 금융 시장을 장악했던 전례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현재 약 8100t 규모로 전 세계 금 보유량의 25%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의 금을 보유하고 있고, 금 가치에 연동된 달러 화폐로 세계 금융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원리로 미국 정부가 막대한 규모로 비트코인을 사들이고 이와 연동된 가상화폐를 국제거래의 표준으로 삼으면 미국이 달러패권에 이어 코인패권까지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열강국들이 앞다퉈 비트코인을 상대국보다 먼저 확보해야 하는 자원처럼 여기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가상화폐 거래로 외화 유출을 우려해 금지했다가 아예 합법화로 정책을 전환했다. 지난 7월 말부터 개인과 법인의 가상화폐 채굴장 운영을 합법화하고 대외무역에서도 가상화폐 사용을 승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중국도 비트코인 및 가상화폐 거래를 그동안 불법으로 규정했다가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브라질과 폴란드도 달러 및 다른 외화처럼 비트코인을 보유자산 중 일부에 편입시키고자 법안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코인 시장까지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미국의 적성 국가들이 가상화폐를 제재 회피 수단으로 쓰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달러 결제가 막혀 위안화나 가상화폐를 이용한 석유거래가 20%까지 늘어난 러시아는 큰 경제적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이나 이란처럼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국가들이나 중동의 각종 무장 단체들도 자금세탁이 훨씬 어려워진다.
결국 새 트럼프 행정부의 가상화폐 친화 전략은 단순히 트럼프 당선인의 대선 표몰이나 돌출발언이 아닌 패권을 장악하려는 국가전략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정부도 이러한 미국과 열강들의 가상화폐 전략에 뒤처져선 안 될 것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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