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 반도체 공장 투자에
지역 활성화하며 치안도 강화
반도체 공장은 지역 경제의 젖줄이다. 어마어마한 투자액이 무수한 인력과 협력사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경기 평택, 용인에 각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들어서며 지역 전체에 온기가 스며들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택한 일본 구마모토현도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도 번화가와는 거리가 멀었던 이곳은 20년 전만 해도 불량배와 호객꾼이 들끓는 '위험한 거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TSMC 관련 인력이 들어서고 외국인 관광객마저 늘어나며 밤 풍경마저 변하고 있다.
야쿠자 활보하던 소도시, 완전히 변했다
일본 일간지 산케이 신문 산하 '석간 후지'는 지난 12일(현지시간) "구마모토의 '밤거리'가 변했다"는 제목의 르포를 냈다. 매체는 TSMC의 일본 법인인 JASM 제2 반도체 공장 건설이 한창인 이곳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주목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구마모토는 이른바 '헤이세이 시대(1990년대)' 감성을 간직한 곳이었다고 한다. 골목길에는 낡은 식당 간판이 늘어섰고, 취객과 불량배(야쿠자), 호객꾼이 돌아다녔다. 이를 두고 매체는 "가부키초(일본 도쿄의 유흥가)를 방불케 하는 위험한 공기가 있었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구마모토의 밤거리는 완전히 달라졌다. 취객 대신 제복 입은 경찰이 골목을 순찰하고, 식당엔 관광객이 넘친다. JASM 공장 건설 관련 인력이 대만 등 해외에서 끊임없이 유입되는 데다, 구마모토의 여러 명소가 재조명되며 관광객도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도체 공장은 지역 경제의 생명수
JASM은 현재 이 지역에 두 번째 공장을 착공 중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선단 반도체 제조 역량 부활'을 목표로 TSMC와 손잡고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제1 공장은 단 20개월 만에 완공됐고, 올해 말부터 실제 생산에 들어선다. 일반적인 반도체 팹이 건조부터 테스트 마무리까지 약 5년은 걸린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눈부신 속도다.
제2 공장은 한화 19조원의 자본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이며, 6~7나노미터(㎚)의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이 들어선다. 일본 정부는 전체 건조 비용의 약 3분의 1을 부담하며, 대만의 경험 많은 엔지니어가 일본 공장에 배치되는 것도 신속하게 허가했다. 또 반도체 공장에 필수적인 '물(초순수)'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TSMC와 손잡고 구마모토의 지하 수원 탐사에도 나서고 있다. TSMC가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일본에서 잘 나가는 이유다.
급격한 변화에 지역 주민 오히려 내몰리기도
JASM 반도체 공장은 그동안 대만, 한국, 중국 등에 밀려 쇠퇴해 가던 일본 반도체 산업 '반격'의 첫 탄이라는 긍정적인 해석도 있지만, 일각에선 구마모토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화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온다. 특히 매체는 이미 구마모토에 살고 있던 현지인들은 '복잡한 심경'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한 현지인은 매체에 "식당은 외국인들로 붐비더라도 밤의 유동 인구는 완전히 줄었다"라며 "최근 경찰 단속이 너무 심해져서 밖으로 나오기 힘들어졌다"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현지(구마모토)를 떠나고 싶지 않다. 가족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구마모토의 시골 마을들은 이전부터 유흥업, 풍속점 등 '밤거리 산업'으로 먹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경찰의 순찰이 늘면서, 밤에 일하는 이들의 수입은 줄었다. 자기 얼굴이 억지로 밝혀지는 게 싫어 일부러 집에서 나오지 않는 업소 종사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체는 구마모토가 경기 활성화로 치안이 개선된 건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지역 사람들은 외롭게 흩어져 있다"고 전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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