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사의 충실의무에 '노력 의무' 추가
주주 이익보호 위해 자본시장법 개정 패키지
국회에 제출되면 상법 개정 논의 속도낼 듯
정부가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정부안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일반주주까지 확대하는 야당 안과 달리 노력 의무 조항을 별도로 신설해 재계의 경영권 침해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절충안이다. 상법과 함께 자본시장법도 손봐 정보의 비대칭 문제 보완 방안도 함께 마련했다.
15일 정치권 등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법무부 등 관련 정부 유관 부처는 상법 개정 정부안을 확정, 단일안을 마련했다. 정부가 마련한 상법 개정안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상법 제382조의3에서 ‘이사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2항으로 신설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상법 개정과 관련해 정치권과 재계, 투자자 사이에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가 어디까지 확대되느냐를 두고서 논란이 있었다. 정부안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상법의 기존 조항은 존치하되, 보호 노력 의무를 신설해 주주의 이익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이사의 의무 상대방은 원칙적으로 ‘회사’를 유지하게 된다. 다만 주주이익 보호도 직무 수행 과정에서 추구해야 하는 의무가 된다. 그 결과 이사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회사와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한 노력 의무를 다했을 경우 '면책’을 보장받을 수 있어 합리적 경영활동이 가능해진다.
그동안 재계는 상법 개정과 관련해 배임죄 소송 등에 시달릴 수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영계의 우려에도 정부가 법 개정 방침을 확정한 것은 최근 두산밥캣(밥캣)·두산로보틱스(로보틱스)와 SK이노베이션(SK이노)·SK E&S(E&S) 합병 이슈까지 겹치며 주주 이익 보호 방안의 필요성이 커진 탓이다.
이 외에도 정부안은 야당의 상법 개정 주장에 맞대응하는 성격도 띠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와 함께 일반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개정을 밸류업 프로젝트로 내세우며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정부는 상법 외에도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자본시장법 등을 패키지법으로 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반주주를 위한 실효적 보호방안을 도입해 정보의 비대칭성 등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 있던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자본시장법 보완 방안 가운데는 상장 계열사 간 합병 시 합병비율과 관련해 기존의 주가 기준을 폐지하고 외부평가에 따른 실질가치를 반영하는 내용이 담겼다. 올 7월 두산그룹은 밥캣과 로보틱스 간 합병을 추진하면서 로보틱스 주식 1주당 밥캣 주식 0.6317462주를 배정했다. 그룹 측은 최근 주식 시세로 교환 비율을 설정해 문제없다는 입장이었지만 밥캣 주주들은 반발했다. 적자기업인 로보틱스보다 우량한 밥캣의 영업이익·자산 규모·이익잉여금 등 본질적 가치는 배제된 주식 교환 비율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또 정부는 합병 시 기업가치 평가 결과 공개를 의무화하고, 물적분할 후 상장 시 공모신주 일정 비율을 모(母)회사 주주에 우선 배정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의 방안도 패키지에 담았다. 모그룹 일반주주가 지배구조 변경 과정에서 더 이상 손해 보지 않도록 하는 데 집중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외에도 기회유용금지 의무의 범위도 기존의 이사에서 지배주주로 확대되는 안도 마련됐다.
정부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정치권의 상법 개정 논의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재계가 정부안을 어떻게 판단할지도 관심사다. 정부안은 야당안과 비교해 법체계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내용 측면에서도 경영계의 우려를 덜 수 있어 재계를 설득할 공간이 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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