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자사주 매입이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이례적으로 구두 경고까지 한 상황에서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입을 통한 경영권 방어 전략을 실행할지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다. 자사주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소각하지 않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이용한다면 최근 정부의 밸류업 정책과는 배치되는 행보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3월 주주총회 이후 2558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이는 회사 지분의 2.4%에 해당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인정되지 않지만, 우호적인 기업과의 주식 교환이 가능하다. 현대차, 한화 등 다른 기업이 도와주면 자사주 교환을 통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고 의결권도 되살릴 수 있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은 대항 공개 매수로 맞불을 놓는 것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자사주 매입으로 방어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에서는 이 경우 고려아연이 1조원 이상을 동원해 MBK 측이 제시한 공개 매수 가격보다 좀 더 비싸게 자사주를 매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윤범 회장이 쓸 수 있는 카드로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게 넘기면 의결권이 살아난다"며 "예전에도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현대차, 한화, LG 등 대기업들과 자사주를 교환한 바 있다. 시장의 눈이 자사주 소각에 대한 최 회장의 결단에 주목하는 이유다.
현재 2.4%의 자사주를 보유한 고려아연은 향후 예정된 자기주식 매수를 마치면 4~5% 수준으로 올라선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2.2%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회삿돈으로 본인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전체 주주들의 이익과 정부의 기조에 어긋난다"고 평가했다.
MBK는 앞서 공개 매수를 시작하면서 법원에 고려아연과 그 계열사가 자사주를 사는 것을 막아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함께 냈다. 자본시장법은 공개 매수 기간에 주가조작 가능성 등을 막기 위해 공개 매수자와 매수자의 특별 관계자가 공개 매수가 아닌 방법으로 지분을 늘리는 것을 금지한다. 법원이 공개 매수 기간(10월4일까지) 자사주 매입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릴 경우, 최 회장 측은 이사회를 거쳐 공시를 내고 자사주 매입을 시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는 회사의 자금으로 최윤범 회장 개인 또는 특정 주주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높은 가격에 자사주를 취득하는 것은 회사에 금전적 손해를 끼치는 행위로 배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장에서 시가로 살 수 있는데 공개매수 가격보다 더 높여서 산다는 것은 자사주 취득을 가장해 회사 재산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또한 MBK파트너스와 영풍의 공개매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가격을 언급하면서 자사주 취득 계획을 밝히는 것은 시세조종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은 불법의 소지가 다분하고, 실현 가능성도 낮은 행위"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급락했다. 전 거래일보다 2만3000원(3.23%) 하락한 68만8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공개매수 마감일이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에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주가에 힘이 빠진 것으로 해석된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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