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통증을 끝낼 유일한 길"…스위스로 떠나는 한국인들[어떤 죽음]

시계아이콘02분 12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뉴스듣기

①회복 가능성 없는 환자들의 희망
쉽지 않은 스위스 승인 절차
지난해 디그니타스 한국인 회원 162명

편집자주죽음은 모두가 겪는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선뜻 내뱉기 어려운 금기어다. 특히 존엄한 죽음과 자기 결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사회적 논의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저마다 윤리·종교적 문제 제기를 의식해 언급 자체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경제는 조력 존엄사에 대한 공론의 장 마련을 위해 국내 상황, 입법, 찬·반론, 해외 사례, 전문가 의견 등을 총 6회에 걸쳐 진단한다.
"통증을 끝낼 유일한 길"…스위스로 떠나는 한국인들[어떤 죽음] 디그니타스 홈페이지. [이미지출처=디그니타스]
AD

2020년 가을 조모씨(79)는 유방암이 뼈로 전이됐다는 선고를 받았다. 날 선 칼이 뼈 마디마디를 무차별적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시작됐다. 그 누구보다도 긍정적이고 활발한 사람이었지만 극심한 고통까지 이겨낼 수는 없었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머리카락, 손톱, 발톱은 다 빠졌다. 손발의 피부는 벗겨졌고,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결국 암은 위장, 폐, 피부로 전이됐고 병원 생활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통증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조씨의 딸 남유하씨는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중환자실이나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통이 너무 심한 탓인지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놔 너무 놀랐다”며 “스위스에 외국인을 위한 조력 존엄사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어머니의 유일한 희망이 됐다. 가족들은 어머니의 결정을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봄 큰 언니가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조씨의 마음은 더 확고해졌다. 언니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는 삶이 탐탁지 않았다. 의료기술의 발달이 수명을 연장했지만, 대부분 삶의 끝은 병원 침대였다. 이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치 않는 사람도 있다. 조씨는 병원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보다 자신의 온전한 의지로 끝까지 살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통증을 끝낼 유일한 길"…스위스로 떠나는 한국인들[어떤 죽음] 남유하씨와 어머니가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남유하씨]

스위스 디그니타스에서 조력 존엄사를 위한 ‘그린라이트(허가)’를 받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서류부터 까다로운 승인 절차까지 두 달 가까이 걸렸다. 특히 병력을 기록하는 라이프 리포트 ‘우울하다(depressed)’ 표현이 문제가 됐다. 문서상 ‘depressed’는 은유적인 표현이고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한 오류임을 설명해야 했다. 영문 의료 기록은 처음에 너무 간단히 작성돼 다시 보내야 했다.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한 여정은 쉽지 않았고, 한 단계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심리적 압박감은 커져만 갔다. 다행히 조씨는 딸의 도움을 받아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조씨의 마지막 소원은 다른 중증 환자들이 부디 우리나라에서 존엄하게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것이다. 일단 낯선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정서적인 불안감이 크고, 환자에게 스위스로 가는 13시간의 비행은 또 다른 고통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 절실하다. 그런데 조력 존엄사의 부재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야 하는 간절한 시간을 서류 준비, 스위스 이동 등에 허비해야 한다. 조씨는 딸에게 “나 같은 사람들이 절대 이렇게 고생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매일같이 되뇌었다.


"통증을 끝낼 유일한 길"…스위스로 떠나는 한국인들[어떤 죽음]

실제 스위스로 떠나는 환자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2022년 박모씨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현재 전이가 돼 복막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복막암은 희소암으로 초기 증상이 없어 조기 진단이 어렵다. 사실상 복막에서 암이 발견되면 이미 병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경우가 흔하다. 박씨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난소암 투병 끝에 2017년 사망했다. 그때 암 투병 생활의 끝을 경험해봤기에 그의 스위스행은 역설적이지만 마지막 잎새와 같다.


박씨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병원에서 주는 약은 효과가 떨어져만 간다. 이제는 혼자 집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덜 아플 때 스위스로 가는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박씨는 “조력 존엄사는 언젠가는 도입될 제도이다. 왜 이렇게 시간을 끄는지 모르겠다”며 “사람으로서 생의 마지막을 고통 없이 갈 수 있는 권리는 존중해줘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AD

디그니타스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의 조력 존엄사를 돕는 비영리단체이다. 해당 기관을 통해 2016년 1명, 2018년 1명, 2021년 1명, 2022년 1명 2023년 3명 등 한국인들이 생을 마감했다. 한국인 회원 수는 2018년 32명, 2019년 58명, 2020년 72명, 2021년 104명, 2022년 117명, 2023년 162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디그니타스 측은 이메일을 통해 “우리의 목표는 디그니타스가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되는 날”이라며 “다른 국가들의 법이 개정돼 전 세계 사람들이 스위스로 오지 않고, 삶에 있어 마지막 선택권을 갖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