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저자는 약 4년 전 문화와 에이지테크(AgeTech)에 대한 연구를 위해 미국 보스턴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다양한 기술 스타트업들을 만났고, MIT 에이지랩(AgeLab)도 방문해 노인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도 봤다.
이때 혼자 사는 노인을 위한 반려로봇을 미국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고양이, 강아지와 같은 동물 형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을 위한 반려로봇이 대부분 사람 모양이었다. 왜 다른지 의문이 생겨 미국 노인들에게 한국에 있는 반려로봇 사진을 보여주며 의견을 물은 적이 있었다. "예쁘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의외로 일부는 무섭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인형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배우 윌 스미스가 출연한 영화 '아이, 로봇'이 연상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저자는 같은 질문을 한국 고령자들에게도 해 보았다. 미국의 동물 형태 반려로봇을 보여주며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귀엽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응답자 중에는 과거 반려동물 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식용문화 관점으로 반려로봇을 대했다. 같은 돌봄로봇이더라도 문화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 있고, 그 효과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와 경영을 연구했던 홉스테드(Hofstede)는 문화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도록 만드는 정신적 소프트웨어라고 정의했다. 홉스테드가 말하는 집단은 크게 국가로 볼 수 있다. 인구 고령화가 세계적 추세가 되면서 다양한 시니어 비즈니스 사례들이 해외로부터 우리나라에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있다. 분명 해당 국가에서 성공하고 잘돼서 우리나라에 소개됐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의 성공한 시니어 비즈니스 모델이 우리나라 문화에 맞지 않아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특히 고령층은 오랜 시간 동안 한 국가에서 살아온 분들이기 때문에 젊은 층에 비해 문화적 정체성이 강하다. 기존 문화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소프트웨어가 강하게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는 집단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이유로 해외의 성공적인 시니어 비즈니스 모델이 국내에서 힘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과거 2008년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되면서 세계 최대의 요양산업 프랜차이즈인 ‘홈 인스테드 시니어 케어(Home Instead Senior Care)’가 국내에 들어왔었다. 하지만, 미국적 비즈니스 모델이 국내 돌봄 문화와 맞지 않아 몇 년 후 한국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사업 실패의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저자는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 무상이나 저가로 제공되는 돌봄서비스에 익숙했던 국내 고령층들이 중고가의 돌봄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직접 지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젊은 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고령층의 돌봄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고령층이 자신의 집 일부를 젊은 층에 저가로 임대하는 셰어하우스가 존재한다. 네덜란드의 '후마니타스(Humanitas)' 요양원은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방을 제공하는 대신 이들이 요양원에 거주하는 고령자들의 친구가 돼 일정 시간 컴퓨터를 가르쳐주고, 맥주도 마시며 좋은 이웃이 되게 한다. 프랑스는 2018년 발효된 엘랑(Elan)법 개정으로 빈방이 있는 고령자가 젊은 세대에게 빈방을 빌려줘 젊은이에게는 주거비용 부담을 줄이고, 고령자들에게는 세대 교류와 퇴직 후 소득보장을 가능하게 했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유럽 모델을 벤치마킹해 ‘한지붕세대공감 사업’을 실시했다. 청년 주거 부담과 노인의 사회적 고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주거 공유 사업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사업은 자리를 잡지 못했고, 민간사업으로도 확산하지 못했다. 공간을 합치는 건 쉽게 성공할 수 있었으나, 우리나라의 유교적 문화에서 세대 간 소통이 서구처럼 원활히 실행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해외 시니어 비즈니스의 성공사례가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하려면 우리나라 문화와 고령자들의 기대치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고령자들은 연령대별로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경험이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에서 살아남은 분들이 갖고 있는 기대와 요구를 젊은 창업자들이 상상한다는 건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보다 먼저 우리나라 노인들의 특징과 가치관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둘째로는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다양한 세대가 만날 기회가 확대돼야 한다. 시니어 비즈니스 종사자들조차도 노인 소비자의 경험하고 생각하는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최근 노인 대상 기술 개발을 위한 리빙랩들이 노인복지관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시니어 리빙랩을 단순히 제품에 대한 사용성 평가 장소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 문화적 만남과 이해가 이뤄지는 장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미국 보스턴에서 만났던 창업자 중의 한 명은 요양원 거주 노인들의 어려운 점들을 몸소 이해하기 위해 12개월간 전국의 요양원을 다녔다고 한다.
해외에서 성공한 시니어 비즈니스 모델을 국내에 정착시키려면 국가 간 문화적 차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한국 고령자들을 위한 현지화 전략, 그리고 세대 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한국 노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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