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개 특허 보유한 발명가·사업가
발명왕 에디슨과의 전류 전쟁 승리
테슬라와 현대 전기 문명의 근간 이룩
한국의 체코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딴죽을 걸고 나선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 이 기업은 창업자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회사다. 조지 웨스팅하우스는 미국의 발명가이자 사업가로, 교류(AC) 전기의 아버지 ‘니콜라 테슬라’와 함께 현대 전기 문명의 근간을 이룬 사람이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에게 두 사람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는 1846년 10월 6일 미국 뉴욕주 작은 마을인 센트럴 브리지에서 농기계 제작자인 아버지 조지 웨스팅하우스 시니어와 어머니 에멀린 베더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조상의 이름은 원래 ‘웨스팅하우젠(Westinghausen)’이다. 그의 조상은 독일의 베스트팔렌주 출신으로 영국을 거쳐 미국에 도착했다.
아버지의 사업 덕분에 웨스팅하우스는 어릴 적부터 기계를 만드는 데 흥미를 느꼈다. 학교에 다니지 않을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공장에서 보냈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15세의 어린 나이에 뉴욕 주방위군에 입대했다. 육군과 해군에서 복무한 웨스팅하우스는 1865년 회전식 증기 기관인 로터리 엔진(성형엔진)을 발명하고 첫 번째 특허를 받았다. 21세가 된 1867년 4세 연상인 마거릿 어스킨 워커와 결혼하고 아들 조지 웨스팅하우스 3세를 낳았다.
그는 1869년 철도 산업에 혁명을 일으킨 제동 장치인 ‘에어 브레이크’를 발명한다. 발명 이전에는 일명 ‘브레이크맨’이 기차의 각 차량에 장착된 제동 장치를 수동으로 조작했다. 만약 브레이크맨이 기관사의 신호를 놓치거나 잘못 해석하면, 탈선이나 충돌 사고로 이어졌다. 반면 ‘에어 브레이크’는 각 차량에 압축 공기 탱크를 내장하고, 공기 저항력을 이용해 감속하는 중앙 제어 시스템이었다. 중앙 제어 밸브의 권한을 기관사 한 명이 맡아 비상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은 오늘날 대형 육상 교통수단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줬다.
웨스팅하우스의 다음 목표는 ‘전기’였다. 1886년 ‘웨스팅하우스 전기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에디슨의 조수였던 니콜라 테슬라로부터 교류(AC) 모터의 특허에 대한 독점권을 획득한 뒤 직류(DC) 전기로 당시 전력 시장을 장악했던 토머스 에디슨의 아성에 도전했다. 직류와 교류의 역사적 대립은 결국 웨스팅하우스·테슬라 연합의 승리로 끝났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전기사업권과 나이아가라폭포 발전소 사업권을 잇달아 따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후 교류 전기는 전 세계 대부분 전력 공급 시스템의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2019년 개봉한 '커런트 워'는 한 치의 양보 없던 양측의 대립을 소재로 다룬 영화다.
1907년 미국발 금융공황으로 인한 경영 악화로 웨스팅하우스는 회사의 경영권을 잃어버린다. 그는 총 361개의 특허를 보유했으며, 말년의 대부분을 공직에서 보낸 뒤 1914년 3월 12일 향년 6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의 사후 웨스팅하우스 전기회사는 방위산업, 가전제품 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1957년 미 펜실베이니아주에 세계 최초로 상업용 가압 경수로형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했다. 이후 전 세계 원전의 절반 이상을 지은 원전 거인으로 성장했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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