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에서 가장 큰 명품업체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조차도 한파를 겪고 있다는 신호가 나왔다. 종종 그래왔듯 바람은 동쪽(중국)에서 불어오고 있다.
LVMH는 올해 2분기 매출이 1% 증가했다고 보고 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를 제외하면 세계 금융 위기가 심화됐던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명품 업계의 성장률 둔화 배경엔 일본이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 종식을 선언했음에도 하락세를 이어간 엔화가 꼽혔다. 이에 명품 큰손인 중국인들이 엔저 혜택을 누리기 위해 일본으로 쇼핑을 떠났다. LVMH의 2분기 일본 매출은 57% 증가한 반면 중국에서는 부진을 겪었다.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을 보유한 스위스 소재 리치몬드와 같은 타 럭셔리 기업들도 일본에서 비정상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유럽 명품 업체가 일본에서 호실적을 보인 것은 결코 축복이라고 할 수 없다. 비용은 유럽 통화로 책정된 만큼 엔화 판매 매출은 수익성을 그만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도대체 일본에서 판매되는 명품의 가격은 얼마나 저렴한 걸까. 번스타인 리서치에 따르면 티파니, 불가리, 샤넬의 가격은 일본이 중국보다 약 6분의 1 정도 저렴하다.
세계 명품 시장에서 중국인 구매 비율은 26%이지만 그중 3분의 1 이상이 해외에서 소비된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명품 업체가 투자를 많이 한 중국에서 소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엔화 약세가 글로벌 럭셔리 업계 고민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훨씬 더 우려스러운 요인은 중국의 일본화다. 중국 소비자들이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를 겪은 이후 일본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가 고통스러운 주택 시장 조정을 겪으면서 인내심을 갖고 합리적인 쇼핑객이 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소비자들은 미국, 유럽보다 앞서가는 듯 보였던 호황기 때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브랜드로 치장할 여유가 없었다. 이 같은 겸손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가성비'라는 개념을 받아들였고, 이는 로컬 브랜드가 꽃을 피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998년 일본 의류업체 유니클로는 미국 업체 파타고니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의 플리스(양털) 제품을 출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패셔니스타들도 저렴한 유니클로와 수년간 매일 들고 다닐 수 있는 명품 핸드백을 믹스 앤 매치해 착용했다. JP모건이 집계한 일본의 전체 수입 패션 매출에서 핸드백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4년 26%에서 2004년 43%로 크게 증가한 점은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일본의 스타일링은 최근 중국인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젊고 부유한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중국 내 플랫폼인 샤오홍슈에서는 인플루언서들이 백만장자처럼 보이지만 실제 돈이 많지 않은 일본인들처럼 옷을 입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헤어스타일, 피부 관리,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반면에 화려한 베르사체 드레스에 샤넬 핸드백을 매치하면 패션 감각이 없는 나이 든 부유층 여성을 비하하는 따마(dama·大母)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e커머스는 명품 소비 개념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일부 인플루언서와 패셔니스타들은 온라인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명품을 주문해 착용한 후 반품하기도 한다. 리치몬트의 럭셔리 이커머스 플랫폼인 육스(Yoox)가 급증하는 명품 반품으로 인해 타격을 받자 최근 중국에서 철수한 이유다.
심지어 버버리나 베르사체와 같은 브랜드조차 판매되지 않은 상품을 개인 소매 판매, 아울렛 매장 등 할인 채널로 보내고 있다. 특히 이들은 앞으로도 중국 소비자의 정가 구매를 유도하는 데 매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상품으로 수백만 명의 소비층을 확보하고 중국 본토에 9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한 유니클로도 인플루언서들의 새로운 소비 패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유주인 패스트 리테일링 측은 최근 큰 폭의 수익 감소를 겪었고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것을 대안으로 찾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한때 자주 진행되던 유니클로의 세일 프로모션이 줄어들었다는 불만을 내놓는다. 그런 다음 다른 곳에서 비슷하지만 더 저렴한 상품을 찾는 방법을 온라인에서 공유하고 있다.
중국의 경기 침체, 시진핑 주석의 쾌락주의적 라이프스타일 단속, 급격한 환율 변동이 매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럭셔리 산업 임원들이 불평하는 것을 듣는 것은 꽤 흔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불평은 구찌의 미키마우스 스니커즈처럼 피곤하게 만든다.
중국인들은 20년 동안 유럽 명품을 구매해 왔다. 중국인들의 소비를 유도하는 기준이 높아졌다. 일본의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중국 소비자들도 자신만의 감각과 감성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슈리 렌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Big Luxury Frets That China Is Turning Japanese'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