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서 <토지>를 읽기 시작한 지 6개월째다. 지겨워서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런 말이 나올까 봐 조바심이 났는데 막상 지루하다는 말이 나오니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중간에 다른 책으로 갈아탔어야 했나? 그러나 이번만큼은 끝을 보고 싶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토지>를 완독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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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가 40대에 쓰기 시작하여 60대 후반에 완성한 이 작품은 문자 그대로 '필생의 역작'이다. 26년 동안 5부 16권의 대작을 완성한 작가의 집념은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표현이다. 마로니에북스에서 발간한 <토지>의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한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으로 여기지만 죽기 전까지 다 읽지 못할 만큼 긴 소설을 박경리 선생은 왜 썼을까. 그 정도로 긴 소설을 쓰려면 몸이 얼마나 망가질지 나는 짐작도 못 하겠다. 말하자면 긴 소설은 머리가 쓰는 게 아니라 몸이 쓴다. <토지>는 몸을 관통한 문학이며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노동 문학이다. 작가는 <토지>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그토록 길고 긴 소설을 썼을까? 그 답은 책 속 인물, 연해주로 독립운동을 떠나기 전에 최치수를 찾아온 이동진이 '산천'이라는 단어로 대신 말했다.
그러니까 박경리 선생은 산천을 위해서 <토지>를 썼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산천이라는 게 무엇일까.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도 <토지> 속에 등장하는 '산천'이라는 단어의 상징성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선생은 정치사상이나 민족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는 물론이고 그 시대를 관통한 모든 개념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그 산천이라는 단어에 있다고 말했다.
<토지>는 개인사, 가족사, 생활, 풍속, 역사, 사회, 온갖 잡동사니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양반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급을 망라한 우리네 삶의 모습이 재구성되어 있으며, 별의별 인물과 별의별 성격들을 재현하고 창조함으로써 인간사의 모든 걸 모아 거대한 그림을 그려 보여준다.
-김설, <난생처음 독서 모임>, 티라미수 더북, 1만50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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