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홍보대사 임명…"탈북민 아픔 알릴 것"
직접 인권상황 조사…'안까이' 시나리오 쓰기도
"한국 사람이라면 '북한인권'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배우 유지태의 첫마디는 이랬다. 27일 통일부 북한인권홍보대사에 임명된 그는 기자들과 만나 "북한 소설로 만든 영화에 배우로 출연한 경험이 있는데, 같은 말을 쓰면서도 다른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너무 크게 자리잡고 있다"며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유지태는 재중 탈북민의 인권침해 실태를 다룬 웹툰 '안까이'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기도 했다. '안까이'는 '아내'의 함경도 사투리로,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 겪는 고초를 중심으로 강제북송 등 현실적 문제를 녹여낸 작품이다.
유지태는 "북한 주민들에 대해 '동포'라는 단어는 빼놓고 이야기한다 해도, 탈북자에 대한 인권문제는 반드시 조명돼야 한다"며 "북한인권홍보대사를 맡게 된 것에 감사하다. 북한이탈자를 돕고 일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구체적 계기'를 묻자, 유지태는 잠시 망설이다 '어린 시절'이라는 답을 꺼냈다. "쑥스럽지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며 "그 때문인지 마음의 빈곤을 느끼는 사람에게 연민을 많이 느끼게 됐다"고 했다. 이어 "북한이탈자, 교포 등 주제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고 그 중에서도 재중 탈북자가 처한 상황을 영화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조사 과정에서 상당히 어려운 현실에 처한 탈북민을 목도했고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유지태는 "자료를 조사하면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며 "예를 들면 (탈북민을) 성 노리개로 삼거나, 사람이 아닌 돼지로 부른다든지, 인신매매와 같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목적의식이 없었다면 너무 황당한 사례들이 많아 상업적 소재로 이용할 소지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며 "꼭 동포라는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인권적 관점에서 이 문제들이 조명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재중 탈북민에 대한 인권침해는 중국 정부의 방침에 기인한다. 국제사회는 1951년 7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조약(난민지위협약)'에 담긴 이른바 '농 르풀망(non-refoulement)' 원칙에 따라 난민을 보호한다. 농 르풀망이란 '짓밟지 않는다'는 뜻의 프랑스어로, 망명자를 박해가 우려되는 국가로 송환해선 안 된다는 국제법상 원칙이다. 탈북민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탈북민을 '돈을 벌기 위해 국경을 넘은' 비법월경자(불법체류자)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재중 탈북민은 신분상 불안을 안고 지내야 하며, 언제든지 강제북송 당할 우려에 노출돼 있다. 신분이 불분명하다 보니 인신매매·강제결혼·성폭력 등 주요 범죄의 대상이 되며, 이 같은 피해는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유지태는 '영화인은 북한인권에 무심하거나 부정적으로 접근한다는 시각이 있다'는 주장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완곡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내 관심사는 진영 논리를 떠나 누가 아픈지, 그에 대한 영화나 콘텐츠를 만들었을 때 얼마나 진심을 담고 있는지, 그게 더 중요하다"며 "정치적으로 어떻게 비춰지는지는 나한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인권홍보대사로서 바라는 게 있느냐'고 묻자 "같은 말을 쓰면서도 다른 느낌을 주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건 너무 가슴이 아프지 않느냐"며 "내가 머릿속으로 언어를 이해하듯이 (탈북민) 이 사람들을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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