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보호와 공정 경쟁 위해
美·유럽서 미끼상품 금지 제도화
"결국은 소비자에게 손해" 논란
우리에게는 생소한 법이 미국과 유럽에서는 흔한 경우가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밑지는 장사 금지법(Below-Cost Sales Law)'이다. 말 그대로 물건을 사들인 도매가격 및 제반 운영비용보다 판매가격을 싸게 책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예를 들면 어느 마트에서 우유 한 팩을 500원에 도매로 사들였고 운송비용과 세금 및 운영비용을 합한 것이 100원이었다면, 이 마트는 소비자 판매 가격을 600원보다 낮게 책정해선 안 된다. 이러한 법이 있으면 기업은 소위 미끼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된다. 이 법은 미국에서 절반이 넘는 주와 벨기에, 프랑스, 독일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아주 오래된 경제학 이론에 기반했다. 큰 기업은 밑지는 장사를 하더라도 일정 기간 시장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자금 유동성이 있게 마련이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다른 사업이나 상품을 통해 손해를 메꿀 수 있다. 하지만 소상공인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큰 기업이 미끼상품을 밑지고 팔기 시작하면 소상공인은 가격경쟁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시장의 경쟁이 줄어들고 큰 기업은 독점적 권한을 이용해서 가격을 훨씬 높게 책정할 수 있게 된다. 그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소비자이므로 종래에는 소비자 복리후생에 피해를 끼친다.
하지만 미국 연방정부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법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소상공인을 몰아내고 독점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끼상품을 파는 경우가 실제로는 드물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밑지는 장사’ 금지법에 따라 기업이 가격을 낮게 책정하지 못함으로써 당장 소비자가 싼 가격에 상품을 구입하지 못하기에 소비자에게는 손해라는 것이다.
경제학계에서는 아직도 이 법이 소비자에게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 공정거래위원회의 견해가 더 신빙성이 있다. 미국의 경우 ‘밑지는 장사’ 금지법이 가장 많이 적용되는 상품이 바로 자동차 기름이다. 미국 월마트나 코스트코 같은 대형 마트는 주유소를 설치하고 기름을 미끼상품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미국 주유소 편의점 협회는 ‘밑지는 장사’ 금지법을 통해 중소 주유소들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 밑지는 장사를 대형 마트보다는 오히려 중소 주유소들이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에는 ‘밑지는 장사’ 금지법이 없다. 그러면 미끼상품을 이용해 공격적인 가격전략을 쓸 수 있는 대형 마트로부터 중소 주유소와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제재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아직 미끼상품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재하는 일률적인 법은 없지만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사업 허가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례로 마트가 주유소 영업하는 것을 잘 허가해주지 않는다. 대형 마트가 주유소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는 이마트가 유일하고 이마저도 지역 상권의 반대가 심했다. 코스트코도 주유소를 설치하기 위해 꾸준히 허가 신청을 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
서보영 美 인디애나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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