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좋아했지만 학교생활 안 맞아
'과학카페' 차리자 연구원들 집합소로
'라떼 이야기'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야지' 하면서 개근을 중요시하던 문화가 있었는데요. 사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출석하지 않는 '부등교' 학생들이 많습니다. 따돌림도 원인이지만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불안해하는 등 여러 원인이 있는데요.
학교에 가지 않으면 과연 공부와는 영원히 담을 쌓은 것일까요? 이러한 편견을 깨고 중학생부터 학교는 가지 않았지만 대신 모두를 위한 과학 카페를 차린 17세 사장님이 일본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오늘은 이바라키현 쓰쿠바시 '페르미 카페'의 사장님, 시마모토 미호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페르미 카페가 있는 쓰쿠바시는 과학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계획도시입니다. 쓰쿠바 대학을 포함해 국책·민간 연구기관 150곳이 있고, 약 1만7000명의 연구원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대덕 연구단지를 만들 때 참고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죠.
시마모토씨는 이곳의 건물 1층에 카페를 열었는데요. 카페에는 연구단지 명성에 걸맞게 비커, 플라스크 같은 실험 기구, 종이접기 도형 등이 진열돼있다고 합니다. 카페에 와서 화학실험을 해볼 수 있다고 하네요.
시마모토씨는 카페를 차리게 된 계기에 대해 "학교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는데요. 원래 '일상에 숨은 화학을 깨달으면 세상을 보는 해상도가 올라간다'며 과학을 좋아했었지만,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부터 학교에 가기만 하면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원래 단체 생활을 어려워한 데다 학교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었다는데요.
대신 공공기관이나 민간에서 여는 과학 체험 이벤트를 맡은 어머니는 전단이나 기획서 작성을 시마모토씨에게 맡깁니다. 워낙 과학이나 수학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나도 이런 이벤트를 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학교에 가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동영상과 책을 보면서 지식을 쌓아갔다고 합니다.
이후 지난해 봄부터 도형을 이용해 수학을 배울 수 있는 종이접기 교실이나, 직접 전지 만들기 실험 등을 2개월에 한 번 정도 인근 카페를 빌려 열기 시작했고, 이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진짜 카페를 차리게 됐는데요. 카페 이름은 이탈리아의 핵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이름을 따 '페르미 카페'로 지었습니다. 무엇보다 '카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컸다는데요.
과학도시답게 이 카페는 중학생과 어른이 양자역학을 두고 논의하거나, IT 업계 사람들이 서로 만나 담소를 나누는 장소로 변모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시마모토씨가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고 학위를 받는 통신제 고등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카페는 쉰다고 하네요. 대신 화학 실험 교실, 다른 분야 강사 초빙 강연회 등을 채워 넣어 다채롭게 프로그램을 꾸미고 있다고 합니다.
'케이크 정확히 7등분하기', '종이접기로 정오각형 만들기' 등 다양한 과제에 참가자들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해답을 찾아가는 카페가 됐다고 하는데요. 해답을 찾는 것은 과학 문제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시마모토씨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등교 거부 학생들도 찾아와 마음을 터놓는 장소가 됐다는데요.
시마모토씨는 NHK에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방법을 알아가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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