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부동자금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로 주식·부동산 시장이 가라앉고 있지만, 예·적금 등 수신상품 역시 시중금리 인하로 매력을 상실하고 있어서다. 금융소비자들도 오리무중인 시장 상황에 '정중동(靜中動)'하는 모양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25일 기준 정기 예·적금 잔액은 905조532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말(904조7488억원) 대비 0.09%(7836억원) 증가한 수치로, 별다른 변동이 없는 '보합세'를 나타낸 것이다.
예·적금을 구분해 보면 정기예금의 경우 873조2151억원으로 전월(873조3761억원) 대비 0.02%(1610억원) 극소한 폭의 감소세를 나타냈지만, 정기적금은 32조3173억원으로 3.01%(9446억원) 늘어나면서 미미한 폭의 증가세를 이끌어냈다. 5대 은행의 12개월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3.50~3.55%, 적금 금리가 3~4% 선에 머물러 있음에도 '현상 유지'에 성공한 것이다.
다른 투자자산 시장은 빠르게 식어가는 분위기다. 증시 대기 자금으로 불리는 투자자예탁금도 역주행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25일 기준 55조6712억원으로 월초(59조6298억원) 대비 6.64%(3조9586억원) 감소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19조653억원으로 월초(19조5322억원) 대비 2.39%(4669억원) 빠졌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한국부동산원이 최근 공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22일 기준 전국 아파트 가격은 0.02% 하락했다.
부동자금, 대부분 파킹통장에…기대했던 금리 인하 지연 때문
아직 대부분의 부동자금은 은행 수시입출금식 계좌(일명 '파킹통장')에 묶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5대 시중은행의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 예금(MMDA) 포함 요구불예금 잔액은 625조9835억원으로 전월 대비 21조9407억원(3.3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지만, 이는 계절적 특성에 따른 착시효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달 요구불예금 감소분은 MMDA에 기인하는 바가 큰데, 대기업이 주로 활용하는 MMDA는 배당 등이 집중된 3·4월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 특이한 상황은 아니다"며 "부동자금이 여전히 요구불예금에 상당 부분 고여있는 부분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25일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약 625조원)은 1년 전인 2023년 4월(약 609조원) 대비 16조원가량 많은 수준이다. 올 1월 말(약 590조원) 대비론 35조원가량 많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남아있던 지난 2·3월 57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요구불예금으로 집중된 데 따른 영향이다.
이처럼 시중 여윳돈이 정중동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론 불확실한 경제 상황이 꼽힌다. 당초 Fed가 연내 적어도 2~3회의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금융소비자의 기대감을 키웠지만, 최근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은 3.5%, 소매 판매 증가율은 0.7%로 모두 시장의 예측치를 뛰어넘었다. 월가 안팎에선 Fed가 금리 인하는커녕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제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란·이스라엘 간 군사적 충돌 등 지정학적 이슈도 점화된 상태다. 양측이 확전을 자제하고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도 휴전 협상을 개시한 상태지만 이런 불확실성의 여파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달 하반기 들어 4.6%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연스레 금리 인하가 뒤따를 것이란 낙관론만 펼치기엔 변수가 많은 시기"라면서 "어떤 자산이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은행들, 파킹통장 유치 경쟁
한편 시중은행들도 대기성 자금을 잡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SC제일은행은 30일까지 일복리저축예금(MMDA)에 3000만원 이상, 최대 20억원 이내 가입하는 첫 거래 고객에게 최장 60일간 매일의 잔액에 대해 최고 3.5% 특별금리 혜택을 준다. 일복리저축예금은 수시 입출금식 예금으로 매일의 잔액에 따라 금리를 복리로 차등 지급한다. 예금을 많이 예치할수록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어 고액 자산가들이 자유롭게 돈을 맡기고 찾는 파킹통장이다. 모집 총한도는 1000억원이며 해당 한도가 소진되면 이벤트가 종료된다.
하나은행도 최근 50만원 이상 급여를 이체하면 연 최대 3%의 금리를 제공하는 급여통장 '달달 하나통장'을 선보였다. 기본금리 연 0.1%에 급여 이체 실적을 충족하면 최대 200만원 한도까지 연 1.9%포인트, 특별이벤트로 1년간 연 1.0%포인트 우대금리를 더해준다. 통상 수시입출금통장이 0.1% 금리를 제공하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금리 혜택이다.
IBK기업은행의 ‘IBK중기근로자급여파킹통장’도 중소기업 임직원에게 최대 연 3.0% 금리를 주고, KB국민은행도 ‘KB마이핏통장’을 통해 급여 이체 고객에게 최대 연 1.6% 금리를 제공한다. 신한은행은 20대를 겨냥한 최고 3% 금리의 파킹통장을 선보이기도 했다. 신한은행의 '헤이영(Hey Young) 머니박스'는 기본 금리 0.1%에 예금주가 만 18세 이상, 만 29세 이하일 경우 2.9%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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