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中 싹쓸이에 '금값'된 김값
국수가게, 김값 폭등에 식자재 고민
"김값 올랐다고 국수값 많이 올릴 수도 없고"
강원 춘천시에서 남편과 단둘이 작은 국수 가게를 운영 중인 유모씨(68)는 최근 아침 시간대 손님에게만 국수에 김 고명을 얹어주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이후부터는 김 고명이 빠진 국수가 나간다. 김값이 폭등하면서 식자재값을 절약하기 위해 유씨가 내린 특단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유씨는 한 달 기준 김 가루 2㎏, 봉지당 5g짜리 도시락 김 한 묶음(16개입 기준) 28봉지를 사는 데 15만원가량을 썼지만 올해 들어서는 30만원 가까이 치솟았다.
유씨는 "13년간 5000원에 팔던 국수를 1000원 인상했지만 손님들 사정도 어렵다 보니 김값이 올랐다고 그에 맞춰 국숫값을 많이 올릴 수는 없었다"며 "그래도 손님에게 미안해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물가 상승과 맞물려 김값마저 전년 대비 1.5배가량 폭등하면서 자영업자들이 식자재값 상승에 울상을 짓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한국 김에 대한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태가 촉발된 것이다. 채솟값과 기름값 상승에 이어 김값까지 고공행진 하면서 자영업자들은 이른바 '물가 삼중고'를 겪고 있다.
2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마른김 1속(100장)의 중도매가는 지난 17일 기준 1만440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월(6618원) 대비 57.8% 뛰었다. 2022년 4월만 해도 1속당 5800원대였는데, 2년 사이 두배 가까이 올랐다. 식자재 마트에서 1㎏에 1만3000원대면 구매할 수 있던 김 가루도 이달 기준 2만9000원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3000~4000원 사이에서 구매할 수 있었던 봉지당 5g짜리 도시락 김 한 묶음(16개입 기준)도 1년 사이 8000원대로 폭등했다.
조미김 제조 업계는 김의 원재료인 원초 가격 급등을 제품 가격 인상의 원인으로 꼽는다. 원초는 바다에서 건져내 가공되지 않은 물김을 뜻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망(120㎏)당 7만원 선에 가격이 형성됐다. 원초 1망은 마른김 35속(3500장)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과 일본 업자들이 원초를 바탕으로 가공된 마른김을 싹쓸이하면서 원초 1망의 가격이 35만원까지 뛰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김 제조업체 관계자는 "조미김 제조 업체들은 1차 공장이 원초로 만든 마른김을 사와 2차 가공을 걸쳐 완제품을 유통한다"며 "중국과 일본 업자들이 마른김을 앞다퉈 사가면서 원초 가격이 5배나 뛰었는데도 업체들은 그 인상분만큼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향후 공급 추이를 봐야겠지만 앞으로도 김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자영업자들은 한 푼이라도 재룟값을 아끼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업체의 제품을 묻거나 가격 인상에 대비해 미리 쟁여둔 김의 보관 방법을 묻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한 자영업자는 "일주일마다 가격이 달라지니 최대한 싸게 파는 곳을 찾아서 조금이라도 김을 사놓으려 한다"며 "몇 달 치를 쟁여놓으려 하는데 곧 여름이라 실온에 둬도 될지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도 널뛰는 김값을 잡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해수부는 수산물 반값 할인행사 품목에 지난달부터 마른김을 추가했다. 반값 할인 행사는 온라인몰 26개사와 마트 18곳에서 국산 수산 식품 구매 시 구매금액의 최대 50%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으로, 매달 약 2주간 열린다.
아울러 민간 수매 지원 예산과 관련해 김 품목에 40억여원을 추가 배정하고 사업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다. 수매 지원은 수산물 가공업체에 정부가 수매 자금을 융자해주고 물량 방출 시점을 정부가 일부 정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조절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 밖에도 김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올해 7월부터 신규 양식장 2000㏊를 추가로 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현재 민간 업체들에 원초 수매 자금을 40억원가량 융자로 지원하는 사업을 모집 중"이라며 "생산 면적도 2000㏊ 확대해 오는 10월께부터 공급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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