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A는 불량식품이다. 애초에 상한 재료를 썼다. 마진에 눈먼 일부 판매상들은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맞춤주문까지 했고, 일부 판매상들은 검증 없이 알지도 못한 채 맛있다며 팔았다. 제조사는 나중에 불량이 눈에 띌 정도가 되니 심지어 멀쩡한 쿠키A와 섞어 눈가림까지 했다. 판매접점이 넓지 않아 배탈 난 구매자들이 많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쿠키B는 정상식품이다. 원재료도 문제없고, 심지어 기관의 안전인증까지 받았다. 마진도 그럭저럭하니 판매상들이 발 벗고 나서 팔았다. 이전에 먹어봤던 수많은 소비자들도 부담없이 구매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판매상들도 예상하지 못한 이상고온으로 쿠키B가 상했고, 많은 구매자들이 배탈이 났다.
쿠키A는 2019~2020년 금융시장을 떠들썩하게 한 라임,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다. 일부 증권사들은 자산운용사에 주문해 펀드를 만들었다. 어떤 펀드는 애초에 약속한 우량 금융상품을 담지 않았고, 어떤 펀드는 손실이 나자 다른 펀드와 섞어 손실을 감췄다. 그러다 주가하락이 단초가 되면서 환매불가라는 사달이 났다. 그나마 사모(私募)이기에 피해 규모가 5500여명(라임 4500여명·옵티머스 1000여명), 2조1000억원(라임 1조6000억원·옵티머스 5000억원)대였다. 당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정한 손실 기본배상비율은 50~60%였다.
쿠키B는 올해 들어 금융시장을 시끄럽게 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이다.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 판매한 공모(公募)상품이다. 주문 제작, 돌려막기, 사기 등과 거리가 멀다. 이미 많은 투자자가 이 상품으로 고수익을 낸 경험이 있다. 그러다 홍콩H지수가 폭락하는 이변이 발생하면서 대규모 손실이 났다. 공모이기에 무려 40만계좌에 19조원이 물려 있다. 지난주 금감원 분조위가 발표한 손실 기본배상비율은 20~40%다.
자본시장법 제55조는 “금융투자업자들은 손실보전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과 동전의 양면관계인 규정이다. 이 규정 때문에 라임 때도 판매사인 은행과 증권사들은 금감원 분조위가 주도한 손실배상 압박에 난감해 했다. 그나마 당시는 주문제작, 돌려막기, 사기 등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금융사들은 홍콩ELS가 라임펀드 등과 동급 취급받는 게 억울하다. 게다가 법적 배상기준인 불완전판매 외에 나이, 액수, 가입경험 등 자의적인 기준들까지 적용했다. 금융사들로서는 배상 후에 배임혐의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감원이 발표한 홍콩ELS 손실배상비율을 보니, 깊게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며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은 것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러 사정을 고려해 배상비율을 라임 때보다 무난하게 낮춰 잡은 게 변명이 될 수는 없다.
배상의 수준이 아니라 자본시장법 제55조에 어긋나는 선례가 이어지는 게 문제여서다. 최 부총리 말대로 금감원이 촘촘한 방안을 만드느라 고생 많이 했다. 곧 있을 총선 일정에 영향받은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주 한 토론회에서 홍콩ELS 배상을 "일회성 이벤트"라고 했다. 사전감독과 사후조치 이슈가 얽힌 중차대한 사안이다. ‘일회성 이벤트’로는 절대 답을 낼 수 없다.
김필수 경제금융매니징에디터 pilso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