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내부 승계 등 KT&G 거버넌스 문제 지적
"차기 대표 후보, 영업이익 30% 폭락 주범"
"이대로 묵인하면 '밸류업' 진정성 의심받을 것"
"KT&G는 겉으로만 4연임을 포기한 채 카르텔이 명맥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업이익을 10배로 키운 외부 후보는 아예 예선 탈락시키고 30%를 폭락시킨 사람은 최종 후보가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대책을 발표해도 주가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KT&G의 거버넌스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행동주의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가 윤석열 대통령 앞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 내용이다. 29일 FCP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체류 중인 이상현 FCP 대표는 전날 국제우편을 통해 용산 대통령실 앞으로 '손편지'를 보냈다. 이 대표는 "진심을 담아 꼭꼭 펜을 눌러가며 제 마음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며 "간곡한 호소문이니 꼭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를 통해 손편지 내용을 글로 옮겨적었다.
"영업이익 30% 폭락시킨 사람이 최종 후보…거버넌스 비정상"
편지는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상현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주식 투자가로서 인사를 이렇게 드리게 됐습니다"는 인사말로 시작한다. 이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잘 되려면 기본적으로 회사 거버넌스가 작동이 돼야하는데, 내부에서 안 되면 외부에서 무엇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KT&G를 예로 들었다. "KT&G는 소액 주주가 많은 소유 분산기업"이라며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KT와 포스코는 정상화가 되고 있습니다만 KT&G는 겉으로만 4연임을 포기한 채 카르텔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대표 선정 프로세스를 보면 영업이익을 10배로 키운 외부 후보는 '예선 탈락'시키고 대신 30%를 폭락시킨 분을 최종 후보라고 발표했는데, 공교롭게도 이사회는 경찰수사를 받고 있고, 최종 후보로 선정된 분도 주요 참고인"이라고 했다.
편지에서 지목된 최종 후보는 KT&G가 최근 차기 대표로 내정한 방경만 수석 부사장이다. FCP는 방 부사장이 사내이사와 수석부사장으로 올라선 2021년부터 회사 영업이익이 감소했으며 미국 사업 실패 등 자격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민경진 전 대표 시절부터 이미 차기 대표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는 '내정설'도 돌았다. 민영화 이후 차기 후보인 방 부사장을 포함해 KT&G의 대표는 모두 '내부 출신'이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방 부사장을 최종 후보로 선정한 이사회는 '호화 출장' 논란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영업이익을 10배로 키운 외부 후보는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차 전 부회장은 LG생활건강의 17년 연속 성장과 매출 9배, 영업이익 22배 증가 등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이번 KT&G 대표에 지원했으나 1차 숏리스트에도 포함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KT&G, 이대로 방치하면 밸류업 진정성 의심받을 것"
이 대표는 "이런 식으로 만약에 사외이사가 주주나 회사의 이익이 아니라 자기네들만의 사익을 추구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외부에서 대책을 발표해도 주가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KT&G의) 거버넌스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편지로 호소했다. 이어 "거버넌스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만약에 방치한다면 지금까지 대통령이 그동안 말씀하셨던 '카르텔 혁파'와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서 진정성이 의심당할 수도 있으실 것"이라고 적었다.
또한 "KT&G의 상황에 그대로 묵인한다면 많은 사람이 앞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의심할 것"이라며 "2022년 '주인 있는 회사'라는 캠페인을 진행한 이후 전국에 많은 소액주주분을 만나기도 하고 편지도 받아봤다. 저도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서 힘을 내려고 한다"고 했다. "굉장히 보잘것없이 작은 지분을 가진 주주이지만 KT&G가 정말 대기업의 모범 사례가 되도록 저희도 최선을 다할 테니 대통령께서도 국민을 위한 명쾌한 메시지와 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져달라"는 호소로 편지는 마무리된다.
방경만 부사장의 대표 선임은 3월 28일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KT&G의 최대주주는 미국의 자산운용사 퍼스트이글 인베스트먼트(7.31%)이며 IBK기업은행이 2대 주주(7.11%), 국민연금이 3대 주주(6.36%)다. FCP는 주총을 앞두고 KT&G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공세 강도를 높이고 있다. 자사주 무상증여로 회사에 약 1조원대의 손해를 끼쳤다며 전·현직 사내외 이사 21명에 대해 손해배상소송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상현 대표를 사외이사 후보로 올려달라는 주주제안도 보냈다. KT&G는 20여년간 산하 재단과 기금 6곳에 출연해 11%가량의 우호 지분을 갖고 있으며, 이를 활용해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경영진 선임 등에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FCP의 주장이다. FCP는 최근 국민연금에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KT&G, "경영권 '카르텔' 사실무근"
이상현 FCP 대표는 싱가포르투자청(GIC), 매킨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와 칼라일 한국 대표를 거쳐 FCP를 차렸다. FCP는 KT&G 지분의 약 1%를 갖고 있다. KT&G에 투자한 이유에 대해 "'좋은 회사'가 '싼 가격'에 거래되고, 그 이유가 '거버넌스'인 경우 이를 개선해 주가를 '정상화'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KT&G가 여기에 해당하는 기업이었다"며 "KT&G는 주주권을 침해하는 경영진, 이 행동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외이사 모두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KT&G 관계자는 “사장 선임절차의 전 과정은 독립된 사외이사로만 구성해 진행했으며, 완전 개방형 공모제를 통해 내외부 차별 없는 공평한 기회를 부여했고,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인선자문단의 객관적인 평가를 반영하는 등 사장 후보 선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강화했다”며 “경영권 승계에 대한 해당 지적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자사주 출연에 대해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이라는 공익 목적의 출연”이라는 입장이다. 이사회 해외출장과 관련해서는 “해외 생산시설 방문 등 업무상 필요한 경우 연 1회, 7일 내외로 출장을 다녀왔으며, 회당 비용은 항공료를 제외하고 1인 평균 680만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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