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 못했던 변수라고 하니 계란 삶기가 떠오른다. 삶은 계란은 그냥 먹어도 맛있고, 장조림으로 만들어도 맛있는데, 계란 삶는 게 생각보다 간단하지가 않다. 일반적으로 쓰는 방법은 이렇다. 물 붓고 계란 넣고 가열하다가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여 10분쯤 더 익혀서 찬물에 넣고 식힌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이렇게 삶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문제는 껍데기를 깔 때 생긴다. 어떨 때는 잘 까지는데, 어떨 때는 정말 욕 나오게 안 까진다. 억지로 조각조각 뜯어내듯이 까다 보면 계란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진다. 무엇보다 이렇게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으면 나같이 재현성이 중요한 사람은 멘탈이 바스러진다. 도저히 참을 수다 없다! 도대체 왜! 어떨 때는 잘되고 어떨 때는 안 된단 말이냐!
숨겨진 변수(hidden variable) 때문이다. 똑같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 뭔가가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물의 양일까? 냄비의 크기? 불의 세기? 계란의 개수? 식히는 방식? 생각할 수 있는 변수는 다 생각해서 일정하게 만들어 재현성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재현성이 확보되면 다시 그 변수 값을 하나하나 바꾸어가면서 어떤 망할 놈의 변수가 계란 껍데기를 안 까지게 만드는지 찾아내야 한다. 또 그 변수가 더 이상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즉, 그 변수가 어떤 값을 가지든 항상 껍데기가 잘 까지게 하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 궁극의 방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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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결국은 그 망할 놈의 숨의 변수를 찾았다. 놀랍게도 계란의 신선도였다. 계란이 너무 신선하면 껍데기가 잘 안 까지고, 냉장고에서 1~2주를 보낸 계란은 무슨 방법을 쓰든 다 잘 까진다. 그러니 찾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에서 꺼낸 계란이 사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냔 말이다. 물의 양, 불의 세기, 삶는 시간 등만 열심히 살폈지, 계란을 사 온 지 얼마 되었는지는 살필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숨은 변수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박치욱,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웨일북, 1만75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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