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디지털·생산·금융 등
초국가적 통제력 확보가 관건
미·중 간의 경쟁은 2차대전 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세계사의 한 과정이다. 주된 도전자가 러시아(옛 소련)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1차 냉전 즉, 종전 냉전은 영토가 확연히 구분된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제로섬 게임이었다. 미국은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봉쇄전략을 실행했다.
하지만 고도로 상호 연결된 현 세계에서 그런 관점은 한계가 있다. 러시아는 자유세계와 차단됐었지만, 중국은 자유세계 진영 내에서 성장해왔다. 미·중의 행위자들은 동일 공간에서 활동하고, 그들 경제는 상호 의존한다. 미국이 중국을 전면적으로 봉쇄하는 게 어렵다. 마찬가지로 중국도 미국 영향권을 벗어나 자국 중심의 폐쇄적 블록을 구축하기가 힘들다.
글로벌 금융통합, 제조업의 초국가화, 노동의 국제적 분업과 기술 및 생산성 발전으로 세계 경제는 점차 특정 국가를 넘어 매우 구조화된 글로벌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그래서 미·중은 지역을 통제한다는 제로섬 경쟁보다는 네트워크에서 중심적 위상을 장악해 파워를 전개하려고 한다. 자본, 상품, 노동력, 지식, 데이터, 기술표준 등의 흐름을 통제하는 데 우위를 차지하려 한다. 미·중은 4개의 상호 연관된 초국가적 네트워크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한다. 이런 네트워크의 노드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는 게 각자의 영향권에 사람, 자원, 공간을 묶는 방법이다.
먼저 인프라스트럭처 네트워크를 둘러싼 경쟁이다. 중국은 2013년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한 일대일로 사업에 착수했다. 이에 대항해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2018년 개발금융회사(DFC)를 설립해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해 금융지원을 하도록 했다. 조 바이든 정부도 2021년 G7 회의에서 ‘보다 좋은 세계 재건(B3W)' 사업 추진을 선언하고, 2022년 주요 7개국(G7)은 글로벌 인프라 투자 파트너십(PGII) 계획을 추진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둘째, 디지털 네트워크와 사이버공간에 대한 경쟁이다. 중국의 대기업 바이두, 텐센트, 알리바바, 제이디 등이 자국 디지털 경제를 지배하고, 해외로 진출해 미국 기업들의 경쟁자가 됐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시절 중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억제하고 중국 제품이 다른 나라에서 사용되는 걸 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또 미·중은 점차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중심적 위상 때문에 이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셋째,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의 경쟁이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생산기지의 위치를 결정했다. 규제가 느슨한 곳을 찾아서 이익 극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이제 양국은 라이벌을 배제하고 자국의 기업이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곳으로 생산기지를 이동하려 한다. 핵심 가치사슬의 디커플링, 리쇼어링, 프렌드쇼어링 등이 진행된다.
넷째, 금융 네트워크 경쟁이다.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에서 미국의 중심적 위상은 확고하다. 미 달러가 글로벌 화폐 금융 시스템의 정점에 있다. 반면 중국의 위상은 열악하다. 위안화 국제화를 통해 달러 의존을 줄이고, 금융 네트워크에서 중국의 위상 제고를 도모한다. 하지만 중국의 시도는 아직 큰 한계가 있다.
미·중의 이런 경쟁에 대해 제3 국가들의 충성도는 부분적이고 가변적이다. 네트워크 연결은 상대적으로 쉽게 재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냉전의 진행 양상은 이런 네트워크 지배 경쟁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김동기 '지정학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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