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실험 희생양으로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
뉘른베르크 강령 선포에도 암암리에 추진
처벌 없이 요직 복귀한 731부대 의사들
청산되지 못한 과제, 현재 세대에게 짐으로
넷플릭스 '경성 크리처'는 옹성병원에서 비밀리에 이뤄지는 인체실험을 다룬다. 대상은 힘없고 가난한 조선인. 비윤리적 행위의 피해자들로 묘사된다. 알고 보면 불변의 법칙이다. 기원전 2세기 이집트에서부터 사회적 약자나 기득권에서 소외된 이들이 희생양으로 내몰렸다. 예컨대 생식과 피임 기술개발에는 주로 창녀와 노예가 동원됐다. 신체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억압으로 불평할 수 없는 약자들이었다.
비윤리적 행위는 2차 세계대전 때 극에 달했다. 독일 나치가 우생학과 유전학에 기초해 우열을 가리고 강제 불임, 안락사, 가스 살해 등을 저질렀다. 대다수 의료인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관련 의학을 '응용 생물학'이라 부르며 추종했다. 요제프 멩겔레가 대표적 예다. 강제수용소에서 푸른 눈동자를 만들겠다며 파란색 물감을 주입했고, 전기 충격을 끊임없이 가하며 신체 내구력을 측정했다.
그는 어차피 죽을 운명인 유대인을 의학에 이용하는 게 뭐가 문제냐며 반성하지 않았다. 1947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유죄를 판결받은 의사 열다섯 명도 조국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형수들의 신체를 해부한 헤로필루스와 에라시스트라투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대상을 사형수로 한정했으며 오직 의학 지식을 얻는 순수한 의도로 진행했기에 정당하다고 피력했다.
'경성 크리처'에 등장하는 가토(최영준)는 이들과 궤를 같이한다. 윤채옥(한소희)에게 나진을 활용한 인체실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순수한 과학자로서 호기심과 열정, 내 피조물에 대한 애착. 뭐, 그런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 그는 실험 대상으로 국적, 신분도 가리지 않는다. 옹성병원을 후원한 일본 귀족 부인 마에다 유키코(수현)가 화상을 입고 괴로워하자 나진을 건네며 권유한다. "선택하셔야 합니다. 교토로 돌아갈 건지, 아니면 계속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지 말입니다."
뉘른베르크 강령(1947)과 헬싱키 선언(1964)이 선포된 뒤에도 비윤리적 인체실험은 암암리에 추진됐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산하 공중의료서비스국이 1932년부터 1972년까지 남부 앨라배마주 터스키기에서 흑인 623명을 대상으로 매독의 증상과 합병증을 조사했다. 단순한 관찰 연구가 아니었다. 정기적으로 채혈하고 뇌척수액 천자를 실시했다. 1943년 치료제로 페니실린이 나왔는데 알리지도 않았다. 전모는 대다수가 사망하고 간호사 유니스 에버스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유족들은 기자, 의학자, 인권변호사 등의 노력으로 약 1000만 달러를 보상받았다.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공식 사과도 받았다.
'경성 크리처'의 모티브가 된 731부대 의사들과 대조된다. 수장인 이시이 시로 등은 미국에 관련한 정보를 넘기도 아무런 처벌 없이 의학계 요직으로 복귀했다. 요시무라 히사토, 스즈키 히로유키 등은 인체실험 결과를 학회지에 발표하거나 이를 토대로 학위도 신청했다. 일본과 미국 정부의 은폐와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로,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미완의 과제다. 현재 세대에겐 무거운 짐이다. 해방될 길은 단 하나, 과거와의 대면뿐이다. '경성 크리처'가 70~80년 뒤를 배경으로 시즌2를 예고하는 이유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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